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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도서관은 맛있어

[고양신문]동네 사용 설명서 한 권 추가요~! 행신동 느티나무 온가족 도서관 동네북 2호 시집『가끔, 아주 가끔』출간

동네 사용 설명서 한 권 추가요~!
행신동 느티나무 온가족 도서관 동네북 2호 시집『가끔, 아주 가끔』출간





지난 12월, 행신동에 위치한 마을 공동체 도서관인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이하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만든 동네북 2호가 나왔다. 동네북은 동네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을 100호까지 내 보자며 호기롭게 출발한 시리즈다. 동네북 1호가 작년 9월에 나왔으니 일년 삼개월만이다. 책 읽는 도서관, 글 쓰는 동네를 만들기 위해 일년에 한 권 정도 책을 내려는 약속을 해를 넘기기 전에 지켰다. 


당신의 욕망이 궁금해요

이번에 나온 동네북 2호 시집의 테마는『가끔, 아주 가끔』이다. 남들에게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이 꿈꾸는 일탈의 순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각자가 은밀히 품은 가끔은 이런 것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솔직하게 드러내보고, 혹여라도 동네의 이웃들이 힘을 보태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면 그걸 들어줘보자는 것이다. 꼭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평소에 저 사람에게는 저런 걸 하고 싶은 별난 욕망이 있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지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번에도 초등학생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신분도 나이도 다양한 마흔 여섯 명의 동네 사람들이 누구는 재치있게, 누구는 진지하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다. 동네 술집 사장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완벽하게 게으른 하루를 꿈꾸었고, 어떤 아빠는 아들과 신분이 뒤바뀐 별난 하루를 상상하기도 했다. 한 편 한 편의 시 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결코 평범치 않은 희망사항들이 배어 있었다.
시집과 더불어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개최한 글쓰기 수업에 참가한 열일곱명의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고스란히 옮긴 책『신나는 문학교실도』함께 선을 보였다. 이 책에는 눈물, 내 꿈 등을 소재로 쓴 아이들의 솔직하고 재미난 시와 그림들이 가득하다. 형식도 내용도 자유분방하다. 친구들이 자기를 따돌리고 놀아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도 들어있고, 키가 천장만큼 커졌으면 좋겠다거나 학교를 블랙홀에 가둬두고 싶다는 황당한 바람도 등장한다.  


동네 사람 사용 설명서


2014년에 낸 첫 번째 동네북은 수수께끼 시집『우리동네 당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앞부분에는 이 책을 보는 방법이 친절히 설명되어있다. 각각의 시를 읽고 그 시속에서 표현되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맞추는 게 수수께끼다. 시를 읽으며, 그리고 시를 쓴 동네 사람의 프로필을 읽으며 상상한 ‘당신’이 뒤쪽에 숨어있는 정답과 일치하는지 맞춰보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다. 독특한 책의 내용과 구성이 출판 기획자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두 권의 동네북은 동네 사용 설명서의 역할을 한다. 각각의 시를 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며 스스로의 내면과 신분을 공개하게 된다. 그러니 시집을 읽는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다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 해 ‘동네 사람’ 사용 설명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쓰고, 그 글을 모아 동네북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물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연결하여 더 크고 성숙한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평범한 이웃들의 속내를 길어올린 글쓰기의 매력


한 권 분량의 작품을 모으기까지에는 느티나무 도서관 이승희 관장의 은근하고도 집요한 성품이 역할을 한 듯하다. 그는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시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무작정 들이댔단다. 물론 처음에 시를 써 보자고 했을 대부분 내가 어떻게 시를 쓰냐고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그러면 이승희 관장은 일단 상대를 마주 앉힌 후 이런 저런 일상적인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유도하면서 상대가 한 이야기 속에서 몇 개의 단어나 문장을 뽑아 메모를 했단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그 메모를 제시하며 봐라, 이미 당신이 이야기한 것에 훌륭한 시의 소재들이 들어있지 않은가, 부담 갖지 말고 당신 손으로 다듬어 정리해보라며 권면했단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재미 붙인 이들이 많단다. 읽기와 쓰기,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을 어떻게 허물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다.  


알찬 강의부터 동네 잔치까지


동네북 만들기 외에도 느티나무 도서관에서는 일 년 내내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하다. 단오, 복, 칠석, 추석, 동지에는 절기에 맞는 세시풍속을 재미나게 챙긴다. 단오가 다가오면 단오에 관한 책을 읽고, 포스터를 그리고, 팔찌와 단오부채를 만들어 가족과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수리취떡도 해 먹는다. 칠석에는 밀 전병을 부쳐 나눠 먹으며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담은 북아트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시풍속의 의미와 재미가 자연스럽게 마을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도서관에서 기획한 인문학 특강도 큰 호응 속에서 지속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름값 비싼 유명 인사 대신 동네 아저씨, 아줌마와 함께 하는 강의였다. 부모 교육을 주제로 잡아 ‘콩 심은 데 콩난다!’ 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이를 튼튼한 콩나무로 자라게 하려면 먼저 부모가 튼튼한 콩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함께 성장하는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생활속 인문학의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활동 초기부터 수학에 대해 지속적인 접근을 한 점도 특별하다. 다들 넌더리치는 수학이라는 과목을 좀 재밌게 접근해보자는 생각에서 ‘수상한 수학 엄마들’ 모임을 시작했단다. 명화속의 수학 찾기, 그림책 속의 수학 뽑아내기 등의 방법으로 기계적인 연산의 수학이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수학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이후 방학기간동안 취약한 수학 분야를 집중 치료해주는 ‘수상한 수학 병원’, 고등학생 친구들과 초등학생 친구들을 엮어 함께 수학 공부를 하며 형제처럼 지내는 ‘수상한 수학 가족’ 등의 파생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마을을 품는 크고 넉넉한 나무 그늘


느티나무 도서관 공간 중 하나인 동네 카페&극장은 장소를 필요로 하는 동네 주민들에게 항상 열려있다. 뮤지컬 동아리를 비롯한 다양한 취미, 또는 스터디 모임이 시간대별로 공간을 이용하고 있고, 크고 작은 동네 잔치와 공연도 이어진다. 공간 사용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사용하는 이들의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내는 후원금으로 대체하고 있다. 평범했던 주민들이 이 공간을 발판으로 전문성을 갖춘 강사로 성장한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어떤 엄마가 무언가에 재능이 있으면 그걸 띄워주고,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밀어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마을 공동체의 관심을 통해 해 낸 것이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물리적으로는 상가의 작은 공간만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그늘에 깃든 들의 활동의 범위와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늘 시끌벅적한 이 별난 느티나무 그늘은 올 한해도 수많은 이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로 북적거릴게 틀림없다.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 도서관
덕양구 행신동 952번지 세신훼미리빌딩 604호
031-972-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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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도서관 이승희 관장
"우리 모두는 이미 공동체의 한 부분 "


느티나무 도서관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자녀들이 어릴 때 뜻이 맞는 엄마들과 함께 공동 육아를 했었다. 아이들이 학교 들어갈때가 되자 다시 방과후 교실을 만들었다. 제도권의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으로 몰아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들이 함께 육아하고 스스로 아이를 가르쳐 본 행복하고 재미있었던 경험들을 동네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자는 취지로 도서관을 열게 되었다.


조합원의 부담으로 마련한 공간을 마을 주민 모두에게 개방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동네 공동체를 외면하고 우리가족만 잘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공간은 조합원들끼리 잘 살자고 만든 공간이 아니다. 동네와 세상이 안전하고 건강해야 우리 아이들도 마을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도서관 활동은 마을을 살리기 위한, 더 나아가 세상을 살리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공동체적 삶은 필수인가 선택인가?
처음엔 나도 공동체가 선택의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십여 년 가까이 공동체라는 고민을 붙들고 살아오며 깨달은 사실은, 공동체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이고 자연이더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공동체에든 속해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 당장 저 사람과 가시적인 관계를 맺지 않아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힘이나 에너지를 통해서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사람 뿐 아니라 나무 한 그루, 나아가 우주 전체하고도 마찬가지다. 나는 세상이 공동체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사람이지,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내 고백이다.


공동체적 삶에 수반되는 자기희생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해다. 공동체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자기 자신의 가치가 오히려 소중해진다. 나도 내 공동체에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스스로가 존엄하게 높아진다. 공동체적 삶은 내 걸 나누고 희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장은 나의 소중한 시간과 품을 내놓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 받아가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내가 못 받아도 내 가족이, 아이가 분명히 받는다. 물론 엄청난 고민과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결론이지만.


구성원들간의 갈등 조율이 힘겨울때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항상 순탄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게 인생이고 삶이다. 맥주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야 맥주가 맛있는 것처럼. 끓어오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생각이 있다는 것이니까. 탄산의 충돌로 인한 끓어오름이 하얀 거품을 밀어올리고, 그 거품은 다시 반대로 맥주 맛을 지켜준다.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 계속 생기는게 힘들기도 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과제다. 구성원들간의 충돌로 인해 피어난 하얀 거품이 공동체의 꽃이다. 꽃을 크게 피우려면 더 많은 충돌과 부딪힘을 조화시켜 나가기 위해 더 많은 품을 들이면 된다.


이 곳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는가.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당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깥 세상이 강요하는 거 하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아가는 사람 말이다. 더불어 자기가 당당한만큼 다른 사람을 당당한 존재로 인정해주고, 우리가 함께 행복해야하고 존중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우며 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