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덩이가 제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덩이'는 제 남편이 동네에서 사용하는 별명이에요.)
종이에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고, 저를 바라보는 초롱한 눈빛을 의식하며 시를 읽어 내려갔지요.
한 동안 '나는 시가 잘 맞는 것 같다'느니, '나중엔 시를 좀 써봐야겠다'는 말들을 슬쩍슬쩍 흘리던 덩이였기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를 쓰려고 작정을 했나...하고 생각하면서요.
제목이 '당신'인데, 시 속의 '당신'을 향해 온갖 좋은 말들이 다 붙어있더군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죠.
"여기 이 '당신'이 누구게요?" 묻는 덩이에게 별 의심도 없이 "저예요?" 되물었다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라는 대답에 혼자 속으로 얼굴이 빨개졌죠.
알고보니 덩이 시 속의 '당신'은 '멘토'였답니다.
그 말을 듣고나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조금 전에 읽은 같은 시임에도 시구 하나하나가 새롭게 이해되더라구요.
평소 덩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녹아있었지요.
제목은 모두 '당신'
'참 재밌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 도서관'에서 동네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들 프로젝트를 한다고 설명해주더군요.
동네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데, 제목은 모두 '당신'이랍니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나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눈엔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는데,
마치 수수께끼를 내듯 '당신'에 대해 시를 써내려간다는 말이지요.
덩이가 다른 사람들의 시도 몇 개 들었다며 이야기해주는데, 어찌나 내용들이 재기발랄하고 새롭던지~!!
제게도 시 한 편 써보라고 권하길래 '그래? 나도 한번?'하며 펜을 들어보았지요.
근데 참...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더군요.
역시 시인은 아무나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뭐 어떠냐~ 싶기도 하고...
며칠 종이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완성된 시 한 편을 느티나무 도서관을 향해 날렸지요.
그리고 작년 늦은 여름, '내 손으로 쓴 시'가 실린 책 한 권을 받게 되었지요.
<수수께끼 시집 우리 동네 당신>이라는 이름으로요.
제목 밑에 '동네사람 쉰다섯 명 지음'이라 적혀있는데 그 말이 참 정겹더군요.
저마다의 '당신'들이 같은 이름 다른 색깔로 시집 안에 숨어있었어요. 시를 읽는 동안은 '혹시 이 분의 당신이 이건가?' 생각했다가도 뒷장에 꼭꼭 숨어있던 '당신'의 실체를 알아내곤 무릎을 탁~!! 치는 경우도 많았지요.
시를 하나 하나 읽어가다가 아는 사람이 나오면 '오~ 이 분도 썼네~' 반갑기도하고,
'이 사람이 이런 재능이 있었나?'싶도록 기발한 작품들도 접하고,
'아... 이 사람은 이렇게 느끼는구나.'하며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이 보이기도 하고,
'동네에 이런 분이 계셨네~'하며 아직 얼굴은 모르지만 시를 통해 통성명 한 것 처럼 왠지 친근해지는 별명들도 생겼지요.
시 한 편 한 편 마다 친절하게 붙어있는 글쓴이에 대한 설명글, 지은이의 별명에 맞게 예쁘게 그려진 삽화 덕분에 시와 시인들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듯해요. 설명글은 참 다정하고 그림들이 귀여웠거든요.
시를 한 번 읽고, 내가 생각한 '당신'과 시인이 생각한 '당신'이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
가끔은 소리내며 웃을 수 있는 위트와 가슴 찡하게 와닿는 글들.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 맞나 싶게, 새로 알게 된 동네시인을 발견한 듯 다시 한번 읽어보는 시.
동네 시인 55명의 탄생!
동네 사람들 55명이 시인으로 '등단'한 기념으로 출판기념회 겸 동네 잔치도 열었고, 서로서로 축하해주면서도 '어~ 나도 이제 시인?'하는 아직까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고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색다른 기분도 살짝 느꼈었구요.
들리는 소문에는 이 시집이 학교 수업에 사용되기도 하고 마을만들기 분야에서도 관심을 끄는 책이라고 하니, 왠지 '나도 뭔가 한 몫 한건가?'하는 으쓱함과 쑥쓰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분이랄까요.^^
▲ 덩의의 '당신'
▲ 지구별의 '당신'
그리고 얼마전.
또다른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지요.
<우리 동네 당신>이 <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추천 도서로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답니다.
이게 뭔소린가...했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매년 학술 부문과 교양 부문으로 나누어 도서 선정을 한다는군요. 올해 교양 부문은 문학, 사회과학 등 10개 분야 총 455종을 선정하는데, 그 가운데 <우리 동네 당신>은 문학 부문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당당히 선정된 <당신>
평범한 동네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이 모여 새로운 탄생의 순간을 함께했다는 기쁨이 있었는데,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그 노력과 내용이 추천해도 좋을 만하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니 어찌 놀랍지 않겠어요!!
게다가 세종도서에 선정된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납품을 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 동네 당신>은 추가 인쇄 되어 전국 2700여 곳의 도서관에 당당히 한 자리 잡고 앉아있게 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시를 쓸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세 지불' 이야기를 들으니 작가로서 받게 되는 인세의 의미가 뿌듯하게 느껴지더군요.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말이죠.
동네에 이런 경사가 났으니, 그동안 고생하셨을 느티나무 도서관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에요.
저는 그냥 흐르는 냇물에 발 한 번 담궈본 것인데, 이렇게 시원하고 상쾌해질 줄은 몰랐거든요.
계속 그 곳에서 깨끗하고 건강하게 흐르고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우리 동네 당신>의 성과에 힘입어, 올해에는 두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네요.
이번에는 <가끔, 아주 가끔>이라는 제목으로 다시한번 동네시인들 등단 기회를 마련하려고 '시집 2탄'을 내놓을 예정이래요.
저도 이미 두번째 시를 써서 보냈어요.
지난번에는 며칠씩 붙잡고 끙끙거렸는데, 이것도 경험이 생기면 수월해지는건지 이번에는 하루만에 뚝딱 써서 보냈답니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부담없이 두번째 냇물에 발을 슬쩍 담궈보세요.
아마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와 기쁨이 따라올거에요.
여러사람의 '마음'이 모인 곳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동네'를 생각하며 이루어지는 일들이 참으로 값지게 반짝거려 기분이 좋네요.
항상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는 분들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동네 시 2차 모집>
시 제목 : 가끔, 아주 가끔
보내실 곳 : 시냇가 010-3309-7153(문자로)
마감 : 대충 연말 연시~
문의 :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 031-972-5444
[참고기사 : 행신톡] 동네 시집 2탄~ '가끔, 아주 가끔' 시 써서 보내주세요~ http://hstalk.tistory.com/485
[참고기사 : 행신톡] <당신> 출판기념회와 마을 잔치 탐방기 http://hstalk.tistory.com/105
[참고기사 : 고양신문] 동네사람 55명 시인 탄생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17
['당신' 시집 구매]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41585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
까페 : http://cafe.daum.net/funnytree
주소 :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952번지 세신훼미리빌딩 604호
전번 : 031-972-5444
▲ 수박의 '당신'
▲ 호택이의 '당신'
▲ 별소녀의 '당신'
▲ 진혁이의 '당신'
▲ 작년에 우리 곁을 떠난 푸의 '당신'
▲ 프로카월드 사장님의 '당신'
글 : 지구별 / 사진 : 지구별, 깨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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