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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사랑하라’고 부추기는 불량 교사

[in 교사] ‘사랑하라’고 부추기는 불량 교사

1학기 중간고사 성적 정정 기간이었다.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과 관련된 서술형 문제 채점에 이의가 있다며 1학년 남학생이 찾아왔다. 문학 작품을 놓고 1~2점 점수 때문에 갑론을박하는 일은 서글프다. 나는 학생에게 “사랑도 못 해보고 이 문제를 논할 수 있겠니? 사랑 먼저 해 봐라.”하고 웃으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 해 가을 그 학생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을 요청했다. 죽고 싶다고 했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라 했던 내 말이 씨가 되었나 하는 생각에 뜨끔했다.

...

그 학생은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지만, 똑똑하고 성실해서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가난한 처지에 여자 친구 사귀는 게 쉽지 않았다. 작은 선물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버스비를 아껴야 했다. 늘 학교 자율학습실에서 공부하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을 수도 없었다. 여자 친구는 점점 지나치게 진지하게 자신에게 빠져드는 이 학생을 부담스러워 했다. 결국 둘은 헤어졌고, 그 남학생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꽤 장시간에 걸친 상담 두 차례, 결국 상대방 여학생과도 상담. 그러나 들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열일곱 살 시퍼런 날것의 사랑에 나마저도 아팠다.

그 뒤로 나는 잠시 학교를 떠나 있었고, 고3이 된 그 남학생의 사진을 신문지상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동아일보의 ‘신나는 공부스타’라는 기획 기사에서였다. 사교육 없이 공부해서 놀랄 만한 성적 향상을 보였다는 내용과 함께 그는 햇빛 속에 웃고 있었다.

졸업 후에 학교로 찾아온 그에게 나는 “내가 사랑해 보라고 한 게 참 미안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사랑 때문에 괜히 아프기만 했던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리고 나쁘지 않았어요. 공부도 오히려 더 할 수 있었죠.”

여자 친구에게 멋진 남자가 되고 싶어서, 그리고 나중에는 헤어진 아픔을 이기기 위해 공부했기에, 사랑이 동기를 만들어줬다는 얘기로 들렸다.

사랑은 삶을 향한 열정 가운데, 가장 생산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이라는 전면적 인간관계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주 놀라운 성장을 이뤄낸다.

사랑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어른들에게 나는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 거냐고. 우리 학생들이 아직 사랑하기에는 인생을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또 묻고 싶다. 사랑이 조건이 있고, 시기가 있으며 거래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는 인생을 정말 제대로 아는 거냐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고, 사랑을 피해 가면서 피울 수 있는 인생의 꽃이 있을까?


사랑하기에 적절한 시기,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룰 만한 나이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좀 더 안전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10대에 그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다. 조금 빨리 찾아왔을 뿐인데, 그 사랑은 불결한 욕정으로 치부된다, 옳은가? 스무 살의 사랑은 사랑이고 열일곱의 사랑은 범죄인가? 10대가 손잡고 팔짱끼고, 어깨에 손을 얹고, 키스했다고 해서 몰아세우고, 벌주고 모욕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들의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고 10대의 사랑을 지지해 줄 순 없지 않은가? 책임질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가 생기면 어쩔 건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렇다고 사랑을 ‘못된 짓’으로, 성을 ‘불결한 것’이라 가르치는 게 옳으냐는 거다. 사춘기(思春期), 봄을 생각하는 시기, 이때의 봄은 이성간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시기가 지나도 우리는 이성간의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만, 특별히 이 시기를 사춘기라 하는 것은, 처음 이성의 사랑에 눈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가지게 되는 성과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잔뜩 겁을 주고, 성교육이라며 성범죄와 순결의 중요성만 가르치며, 성을 더럽고 나쁜 것이라 가르쳐 놓으면 우리 사회가 건강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 역시 자기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미혼(부)모가 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고통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런데도 실수로 아이가 생기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러니까 죄의식을 심어주거나 엄격하게 금지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란 얘기다.

정말로 청소년들이 성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미혼모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엄격하게 처벌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청소년을 무성(無性)적 존재로 취급하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피임법과 육아에 따르는 어려움, 그리고 법적인 문제와 같은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16세 춘향과 이몽룡은 만난 첫날밤을 함께 보내고, 만 14세 줄리엣과 로미오도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이들의 사랑이 불결하다고 생각하거나 춘향전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외설이라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학생들의 성에 대한 한국 어른들의 시선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명이 고귀하다면, 성도 사랑도 고귀하다. 생명이 아름답다면, 성과 사랑도 본질적으로는 아름답다. 그것이 10대의 것이라 해도. 권장하지는 않더라도 모욕하고 단죄할 자격은 제 3자인 어른들 누구에게도 없다.

20150331 글:눈보라(전직고등학교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