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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너의 몸이 네 것임을 알리지 말라

[in 교사] 너의 몸이 네 것임을 알리지 말라

“학생을 정지시킨 후 차렷 자세에서 시선은 전방을 바라보게 하고 ‘앞머리가 눈썹 아래일 경우는 대부분 앞머리가 눈을 가릴 수 있으므로 안 됩니다. 옆머리는 귀에 닿으면 안 되고 뒷머리는 목깃에 닿으면 안 됩니다.’라고 지도한다.”

2010년 학교에서 학생 집중단속 참고 요령으로 배포했던 문건의 남학생 두발 지도 요령이다. 이 문건에는 그 외에도 교복 단추를 하나라도 풀었을 때, 치마길이가 무릎 위 1㎝ 보다 짧을 경우, 액세서리를 착용한 경우 등등에 대처하는 친절하고 꼼꼼한 지도 요령이 적혀 있었다.

학생 인권 조례 시행 이후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 용의 복장에 대한 세밀하고 엄격한 규정은 존재한다.
어느 해인가는 4월 초에 여름 날씨처럼 더운 적이 있었다. 특히 여학생들이 스타킹 신는 것을 힘들어 했다. 얇지만 보온성이 뛰어나서 겨울에도 각선미를 자랑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스타킹. 웃옷은 벗어놓을 수 있고, 소매는 걷을 수 있지만, 스타킹은 애물단지였다. 여학생 반 담임을 했던 여선생님들은 하복 규정에 맞는 양말을 신고 오라고 권했다. 그러나 다음날 양말을 신고 온 학생들은 줄줄이 규정 위반으로 벌을 받았다. 우리 학교의 복장 규정에 따르면 춘추복에는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부 선생님들은 스타킹을 신을 것을 주문했다. 나는 교직원 회의에서 꽤 장문의 글을 읽으며 이런 단속이 불합리함을 얘기했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특별한 조치 없이 흐지부지 된 채로 이듬해에는 또 비슷한 단속을 하기도 했다.

스타킹이냐 양말이냐까지 단속하는 데 대해서는 그나마 이의제기라도 해보았지만, 학생들의 용의복장에 대한 세밀한 규정을 보고 있으면, 무엇을 위한 지도인지 궁금해지곤 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동복과 춘추복, 하복 착용 기간을 정해 놓는 것이다.

이른 더위로 변덕을 부리는 봄 날씨에 모두 입어야 한다는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하복을 입고 온 학생들을, 반소매를 입은 교사들이 교칙 위반으로 벌칙을 준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꽤 오래 전이지만, ‘애국조회’를 하던 어느 하루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격한 복장 규정의 모순을 교사들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기에 간절기에 춘추복과 하복, 동복의 혼용 기간을 둔다. 그때도 그런 기간이었기에 학생들의 복장은 다양했다. 갑자기 교장선생님께서 분노하셨다. “이게 무슨 교복이냐?”고. 그때의 교장선생님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단정하게 서 있는 전교생의 모습을 기대했던 거다. 그 뒤로 그 교장선생님이 있는 동안은 간절기의 혼용기간마저도 없이 지냈다.

 날씨에 따라, 개인차에 따라 긴소매를 입느냐 겉옷을 입느냐 하는 것은 대단한 교육적 주제가 아님에도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인 나 역시도 이런 문제를 관리자나 동료에게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그리고 얘기하더라도 거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나의 소심한 반격은 그저 수업 시간에 “내가 더우라고 할 때, 더위를 느껴야지 그렇지 않으면 혼내 줄 거야. 남들이 다 추위를 느낄 때 날짜 맞춰서 추우라고! 함부로 추위를 느끼는 건 용납 못해!”  따위의 농담을 던지며 학생들과 함께 냉소하는 것이었다.

 이렇게밖에 못하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부 선생님들은 새벽같이 등교하여 교문이나 현관에 서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겨울에는 특히 몹시 고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나 수업이 적지도 않다. 일과 중에는 막무가내로 반항하고 엇가는 학생들과 위엄을 갖춰 상대해야 한다. 사실 이런 학생부에 대한 경외감 없이 현재의 학교 시스템이 굴러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교생은커녕 한 학년, 아니 수업 들어가는 반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든 학교에서 교사들은 이런 위엄에 기대는 것은 불가피하고, 인간적이고 세밀한 생활 지도보다는 통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선생님들은 학생부 업무를 맡는 것을 기피한다. 그렇기에 학생부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만 권위적인 대상이 아니다. 많이 수고하시는 분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권위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학생 지도나 수업과 무관해 보이는 수많은 서류작업들 (대부분 단위 학교의 모든 교육 활동을 교육청, 교육부에 시시콜콜 보고하고 간섭받기 위한 것과 입시 성적 자료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실질적인 초중등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성실하게 이수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 아닌)을 없애든지 간소화하고, 현재 학생부에서 하고 있는 업무를 상담 중심으로 전환해서 모든 교사들이 매진해야 한다는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몸을 통제하는 것은 권위에 굴복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학생들이 교사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가끔 문제제기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대답이 궁색해지면, 용의 복장으로 트집을 잡으면 학생들은 십중팔구 입을 닫고 저자세가 된다. 그리고 복장 규정은 워낙 까다로워서 잘 살펴보면 어딘지 한 군데 쯤은 규정에 꼭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대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문학을 가르치다가 연관되는 내용이 나올 때면,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몸의 통제가 사람을 쉽게 굴복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수업 중에 시험 삼아 보여 주곤 했다. 내가 한 학생을 일부러 합리적이지 않은 꼬투리를 잡아 꾸짖는다. 그러면 그 학생은 당연히 나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한다. 이럴 때 셔츠의 단추가 풀렸거나 타이를 매지 않은 것을 야단치면, 그 학생은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닫는다. 그러고 나서 이것이 나의 연기였음을 얘기하면 학생들은 작은 탄성을 지르곤 했다.

교직생활 초창기에는 두발 단속으로 학생들의 잘려나간 머리가 교정을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비참한 심정을 느끼기도 했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이런 저런 규제를 받고 있고,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다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심심찮게 체벌 사례를 들을 수 있다. 한 반의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단체로 책상 위에 무릎을 꿇리기도 하고, 등교하는 학생의 따귀를 때리거나, 가끔씩은 대걸레를 휘두르는 체벌이 행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체벌의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복장이나 외모의 통제이다.

 

염색이나 화장을 한 학생들, 피어싱을 하거나 교복을 줄여 입고 가끔 문신을 하기도 하는 학생들을 보며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10대를 위한 저가 화장품을 개발하고, 아이돌 스타를 통해 마케팅을 한다.
교사를 포함한 기성서대들에게 학생들의 이런 외모가 왜 문제가 되냐고 물으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학교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러나 지금의 헤어스타일이 어느 시대에나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 상투를 자른 짧은 머리를 했을 때, 그것은 충격을 넘어선 불경이었다. 지금 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배낭은 처음에 학생들이 학교에 매고 왔을 때는 단속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손에 드는 학생 가방을 모두 들고 다녔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단속의 대상만 바뀌었다. 학생들이 편안한 배낭을 획일적으로 들게 되고 그게 당연시 되게 될 무렵, 나는 손에 드는 가방을 들고 온 학생을 단속하는 학생부 선생님을 보고 아이러니를 느낀 적이 있다.

외모를 규제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헌법의 정신인 ‘신체의 자유’에도 위배된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모습이 어른들에게는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한겨울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은 안쓰럽다. 학교마다 여학생들을 위한 바지 교복이 있다고도 하지만, 디자인이 매우 촌스러워 아주 특별한 학생이 아니면 선택하기 꺼려한다. 교복을 그대로 두고 안 입어도 단속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내가 다니는 대학에도 교복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안 입게 되었고, 지금은 입는 학생이 없다고 했다. 90년대에 교복이 자율화되어 학생들이 사복을 입고 등교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교복 착용 여부가 학교장 재량에 맡겨지고, 결국 자율화 10년 만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복이 부활되었다. 그때의 명분은 다양한 옷차림으로 인해 드러나는 빈부격차나, 매일 입을 옷을 고민하는 것이 귀찮음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율화되었던 교복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에 일종의 동의가 필요했던지 당시의 많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교복 부활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다수 학생들이 교복 착용에 찬성했다. 그러나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 전체 학생이 모두 교복을 입어야 한다거나, 교장의 결정으로 모든 학생의 복장이 세밀히 규제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2010년 설립된 서울형 혁신 고등학교인 선사고등학교에서는 특히 학생 인권 문제에 주목하면서, 학생 생활 지도의 훌륭한 사례를 만들어냈다. 엄격한 생활 규정 대신 학생-교사- 학부모가 함께 하는 3주체 생활 협약을 만들었다. 민주적인 협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 이 협약의 조항 가운데 위반 시에 벌칙이 가해지는 조항은 8개에 불과하다. 그 외에는 규정은 있지만, 스스로 지킬 것을 권고하는 조항이라 했다. 그리고 그 조항들은 한 번 정해 놓으면 절대적 권력을 갖는 불가침의 규정이 아니라고 했다. 수시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회의를 통해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이며 수정되거나 보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사고에는 교복을 단정히 입는다는 규정은 있지만, 그것을 어기는 것이 학교 공동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행위라 보지는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벌칙은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사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꽤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선사고 선생님 한분은, 자신이 선사고가 아닌 다른 학교에 근무했다면, 학생들과 이렇게 깊고 좋은 유대관계를 맺기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외모를 규제하기 위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니,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하게 되더란다. 교사 학생의 관계가 좋아진 것은 교수- 학습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수업 시간에 학생 참여도도 높아지고, 수업 이외의 시간에도 활발히 질문을 하는 등 피드백도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공부에 방해되니 머리를 자르고, 치마길이와 바지통을 단속하며 수도승처럼 살라고 학생들에게 강요한다. 추위와 더위마저도 마음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며, 자신의 몸을 어떻게 가꿀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21세기 창조교육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실랑이를 보면서 나는 가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이런 명제는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다. ‘너의 몸이 네 것임을 너에게 알리지 말라’

20150319 글: 눈보라(전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