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10대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in 교사] 10대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첫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날이었다. 수능 전날이었던 것 같다. 단축수업을 해서 일찍 일과가 끝난 학교 운동장에 하얀 눈이 하염없이 쌓이고 있었다. 우리 학교 뒤편에는 중학교가 있다. 눈발에 취해 있던 내게, 복도에 나갔다가 교무실로 들어온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남녀 학생이 중학교 본관 앞 계단에 앉아 눈 내리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한 시간째 꼭 붙어 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달달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이제 갓 이성에 눈 뜨기 시작한 아이들의 첫눈처럼 순결한 사랑, 시간이 멈춰진 듯한 경이로움을  떠올리면서……. 그때, 나의 이런 상상을 산산이 깨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료교사의 말이었다. “쟤들 저러고도 성욕이 안 생기나?”


 조금 전까지 첫눈 같던 나의 감성은 졸지에 구정물로 더럽혀졌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나이 때 하는 사랑이 더 순수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바로 “애 생기면 어떻게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그 선생님과, 그가 대변하는 수많은 한국 어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물론 그런 일이 없는 게 더 나을 수 있겠지만, 사랑해서 아이가 생겼다면 죄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잘 기를 수 있게 주변에서 도와주면 안 되냐’고. 그리고 ‘저 아이들이 사랑해서는 안 된다면, 몇 살이면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경제적 책임을 질 수 있을 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그런가?  경제적 여건을 갖춘 뒤, 결혼이 가능할 때, 그리고 아이를 양육할 준비가 된 다음, ‘이제 사랑 시작’하고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이기나 한 걸까?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모욕이지 않을까? 그런 것만 사랑이라면,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는 가난해서 더 진실인 사랑의 아픔을 읊고 있다. 10대라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1학년 여학생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을 때, 학생부 교사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서 아이패드를 보여주며, “누구지? 빨리 나와” 라 소리쳤다. 아이패드에는 CCTV를 캡처한 학생의 모습이 있었다. 두 명의 학생들이 불려 나가고 나서, 나는 나머지 학생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아이들이 일제히 볼멘  소리로 투덜댔다. 남학생에게 생일 선물을 전해 주러 교실로 찾아간 것 때문에, 수업시간에 불러내다니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며칠 전 또 다른 자기 반 학생이 남학생과 팔짱끼고 하교해서 처벌당했다는 얘기도 했다. 이 얘기 끝에 덧붙인 그들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손을 잡은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손을 잡은 것이 팔짱 낀 것보다 신체적으로 의미 있는 접촉이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이 말은 학생들도 ‘이성교제는 잘못’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임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성교제를 ‘풍기문란’이란 항목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손을 잡거나 팔짱낀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키스하다 발각되면 교내 흡연보다 강한 처벌을 받는다. 여학생이 임신한 경우 권고 전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이란 성범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미성년자의 성은 범죄와 연관된 것일 뿐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여건상 10대의 사랑이란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동반하는 게 사실이다. 그야말로 당사자들에게는 재난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10대의 사랑에 따라올 수 있는 어려움을 알려 주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일이기에 필요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면서 죄악시하고, 꾸짖으며 교칙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옳을까? 남녀학생이 서로 만나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라 가르친다면,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자연스러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사회의 성의식은 유난히 불건강해 보인다. 사랑과 성에 대한 욕구는 억누르고 처벌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왜곡될 뿐이다.


 성장기 내내 성과 사랑을 불온시하고 죄악시한 교육을 받은 결과 대다수 한국 남자들에게 성이란 야동 속의 변태적인 욕망이자 범죄이며, 대다수 한국 여자들에게 성은 잘못하면 인생 종치는 위험한 것이 된 듯하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2010년 성매수 실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1년 동안 성매수 경험이 있는 한국 남성은 10명 중 4명으로 미국의 10배, 합법적으로 성매매가 가능한 오스트레일리아나 네덜란드의 두 배가 넘는다. 또한 성범죄 발생률 역시 OECD국가 중 2위 (‘OECD 국가 성범죄 발생률’ 보고서, 2009년 9월 발표)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은  복잡해서 경제, 정치, 문화적인 여러 요인으로 분석될 수 있겠지만, 나는 학교나 어른들이 가르친 성에 대한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위의 보고서 역시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청소년기 교육만이 양성평등 인식을 길러줄 수 있다. 징벌적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150325 글: 눈보라(전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