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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평가만 남고 수업이 사라진 교실

[in 교사] 평가만 남고 수업이 사라진 교실

 

1년에 네 번 있는 정기고사. 시험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당당히 자습을 요구한다. 고등학교는 내신이 입시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 요구는 더욱 정당해 보인다. 시험을 앞둔 마지막 한 두 시간까지 수업하는 선생님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런 자습에는 주로 지금껏 수업시간에 없던 질문이 빗발친다. 그러나 그 질문들을 듣고 있으면 나는 정말 슬프고 초라해졌다.

그래서 자습을 하도록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라. 그렇지만, ‘...나와요?’ 로 끝나는 질문이나, ‘이거 해야 돼요?’라는 질문은 사절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질문을 바꿔서 이렇게 물어본다. “선생님, 이거 알아야 돼요?” 이 말의 진의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 당신이 출제하고 검토한 시험지에 지금 내가 묻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말해 주세요. 만약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깨끗이 머릿속에서 지우겠습니다. 아니, 아예 안 볼 거예요.” 참으로 황당하고 당돌한 질문이지만, 한편 학교에서 학생들의 질문이란 게 넓게 보면 거의 이런 종류 외에는 사라진지 오래라 본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세상에 학생이 교사에게 묻는 질문 중에 가장 바보 같은 질문이로구나. 알아야 되다니? 몰라야 되는 것이 무엇이니? 우리가 무슨 첩보요원도 아니고. 비록 너희가 오직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게 사실이라 해도, 얘들아. 우리 밑바닥까지 추해지지는 말자. 설령 위선이라 해도 그냥 정말 공부하다가 궁금해서 타오르는 지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질문하듯 그렇게 질문해 보렴. 난 모든 걸 포기해도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가 ‘뽀대’란다.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서 대놓고 유치하게 굴지는 말자.”
농담 섞인 진담이었지만, 학생들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출제자인 내게서 어떻게든 이미 출제된 시험문제에 대한 정보를 빼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저런 질문들은 그래도 그나마 나은 편인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내가 조금만 곁을 보이면, “시험 문제 찍어줘요.”라는 말까지 했을 테니 말이다.

시험이 끝난 날과 채점한 서술형 답안 점수를 확인시켜 준 날에는, 평소 질문도 의욕도 없었던 학생들이 우르르 교무실로 몰려온다. 그간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교과 내용에 대한 쏟아지는 관심의 세례 속에, 나는 일순 활기마저 느끼곤 했다. 학생들에 둘러싸여 수많은 질문을 받으며, 간혹 아이러니하게도 전에 없이 가르치는 행복감(?) 비슷한 것마저 스쳐가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하루일뿐이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물론 시험 끝나자마자 ‘다음 시험’을 위해 수업에 집중하는 모범생들이 있어서 그래도 교사들은 근근이 수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수업이 진짜 ‘교수-학습’(가르치고 배움)이긴 한지 나는 항상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줄 만한 현상이 있다. 바로 학기말 수업 파행이다. 7월과 12월 초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교실은 수업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오로지 ‘줄세우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작년 한 방송사의 인터뷰는 이런 현실을 정말 리얼하게 보여준다.

 

앵커: 기말 고사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일주일 사이 학교는 사실상 수업 공백 상태가 됩니다. 학생들은 자습을 하거나 영화를 보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요. 알차게 보낼 방법은 없는지 류환홍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터뷰:학생]
(기말고사가 끝나고 이제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데, 이 시점에 학교수업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학교 가면 자습이나 애들이 영화 갖고 온 거 그것 보거든요. 그것 보거나 아니면 계속 자는 애들도 있어요."
[인터뷰:학부모]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을 안 한다고 하는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짧은 기간이지만 학생들한테 보다 유익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니 정말 학부모 입장에선 너무 답답한 노릇입니다."
기말 고사가 끝나면 선생님들은 시험 성적을 매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마땅히 공부할 것도 없으니 대부분 자습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합니다.
                                                                                                                -YTN뉴스, 2013-07-21 기말고사 후 수업 실종, 대안은 있다!

 

이 뉴스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이 기간에 텃밭가꾸기 같은 동아리 활동이나 진로 체험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교육부의 인식도 이와 유사해서 작년 11월 이 기간을 축소하고 방학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자유학기제’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대안’인가? 이 기간의 수업 파행 현상은 사실은 그 외의 기간의 수업도 ‘진정한 수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할 만한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중간고사가 끝난 첫 수업, 문학 교과서에는 황현의 ‘절명시’와 이육사의 ‘절정’이 실려 있었다. ‘절명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제목의 한자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때 대뜸 한 학생이 내 말을 끊고, 다음 페이지에 있는 ‘절정’이 기말고사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지 물었다. 나는 너무 뜬금없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시 속에 한 사람의 목숨과 불꽃의 삶이 어떻게 담길 수 있는지, 문학 속에 인간의 뜨거운 피와 숨결로 새겨진 역사를 어떻게 학생들과 함께 느낄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대한 건 ‘교수 - 학습’활동이 일어나는 수업이었지만, 그 학생이 기대한 건 다음 기말고사 시험 문제에 대한 힌트였다. 나는 실망했고,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참고서를 보거나 인터넷에서 다운 받으면 너희가 원하는 지식을 10분만에 정리할 수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이 아닌, 시험 준비만을 해왔기에 학생들이 한 것은 진짜 공부가 아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나온 표현법은 줄줄이 욀 수 있지만, 김소월이 사무치게 아름답게 느꼈던 영변의 진달래꽃이 어땠는지 궁금해 하지 않으며, 소월의 생애가 얼마나 외롭고 비참했는지, 그것이 그의 문학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사색하려 들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란 무엇이며,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제도화되어 있는지는 암기했으되, 그 제도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고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시험에 출제해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 내 동학년이 한 날 한시에 보는 정기고사에 의한 경쟁에 의존해서 학교와 수업은 겨우겨우 굴러가고 있을 뿐이다. 각 반의 담당 교사와 학생 구성 등 여러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의 총량을 객관화해서 내보일 수치를 만들고, 그것으로 줄을 세워 경쟁시킴으로써 명목상의 ‘수업’을 겨우 연명해 가는 것이 공교육을 위한 길일까? 나는 공교육에서 이런 형태의 평가는 축소되거나 궁극적으로 없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수업이 살아나고 사교육도 줄어든다. 수능 때문에 하는 사교육보다 학교의 정기고사 때문에 하는 사교육이 훨씬 많다. 어려서부터 끝없이 변별되고 경쟁에서 탈락된 낙오자들을 양산했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예 학업을 손 놓은 무기력한 학생들이 늘어난다.

시험을 통한 경쟁으로 학습을 시키는 것은, 교사와 교육이 가장 적은 노력을 통해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그 유혹도 크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수업의 소외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수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평가가 보조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평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수업이 수단이 되는 학교. 주객이 전도된 교육은 종국에 가서는 학교와 교사의 입지를 위협할 것이다. 점점 공교육이 존재 이유가 없어져 가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20150302 글: 눈보라(전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