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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어떤 꿈을 꿀까?

[in 교사] 어떤 꿈을 꿀까?

어려서 장래 희망을 물으면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어서 난처했다. 꼭 대답해야 할 때는 ‘훌륭한 사람’이라 했다. 어른이 된 뒤 어린 딸과 함께 본 ‘곰돌이 푸’ 만화에 등장하는 소년, 크리스토퍼 로빈이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어른들은 왜 꼭 우리에게 무엇이 되라고 할까? 그냥 <내>가 되면 안되나?’ 대충 이렇게 기억한다.
한때는 정부에서 이런 교육 지침을 홍보하던 적이 있었다.
“모든 교과목을 잘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하면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런 주장은 지금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석연찮다. 그래서 가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꼭 뭘 잘해야 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은 적당히 잘하고, 저런 것들은 조금씩 못하는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어떤 분야에 탁월하진 않지. 그냥 그런 채로 살면 안 될까? 꼭 특출하게 잘하는 것 없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고, 착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요즘에는 또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라.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온다.”
글쎄. 당장 성인의 경계에 접어든 많은 고등학생들을 만나며 살았던 나는, 이 말에도 의구심이 든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모두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 다수가 제일 매력을 느꼈던 분야는 단연 예체능이다. 물론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와 춤, 미술에 심취해서 성공하고 돈도 벌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거나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체능 분야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학생들이 장래 희망으로 삼는 직업들은 경쟁이 매우 심하고, 이미 현재의 성적이나 학습 수준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직업이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 말에도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우리 학생들이 그런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아실현’이 좌절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하고 싶어서, 잘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직업을 가지게 되지 않더라도, 그저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담당해야 할 일이기에 그 일을 하게 되더라도, 모든 직업이 고귀하고 의미 있다고 믿을 수 있게 가르치고, 그렇게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옳지 않을까.

2010년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 기사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참신한 기획이었다. 그 가운데 이화열 기자의 <택시비도 없는 변호사, 아우디 모는 빵집 주인> (3월 23일자) 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겨울 바캉스’철이 되자 빵집들이 거의 다 문 닫아서 빵을 구하기 힘들어 시장에서 줄을 서는 불편한 모습을 전하면서, 한편으로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휴가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불편을 감수한다고 했다. 기사 제목처럼 프랑스는 학력 격차가 직업간 임금이나 빈부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좋은 직장의 기준은 임금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만이 아니라 했다. 프랑스인들은 임금 못지않게 ‘빠른 퇴근 시간과 휴가’를 직장 선택의 기준으로 굉장히 중시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부모들은 굳이 일류 대학에 아이가 입학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도 했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프랑스 사람들은 일등에 그다지 열광하지 않는다. 올림픽 금메달 숫자에도 지독히 관심이 없다. 그랑제꼴이라는 엘리트 선발시스템의 치열한 경쟁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기술전문학교를 간다고 열등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과외공부를 시켜서 억지로 성적을 끌어올리려는 부모를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2년 ‘대형마트 강제 휴무’ 시행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그때 우연히 보았던 플래카드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600만 맞벌이 부부는 어쩌란 말이냐’
나는 플래카드의 글귀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우리 동네 마트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던 구인 공고를 본 적이 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 마트의 그 아주머니들도 집에 가면 맞벌이 부부가 아닌가.
물론 장시간 노동 국가인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로 사는 것이 녹녹하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자신의 불편에 앞서,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사람’임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토록 선정적인 글귀를 내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꽤 오래 전에 읽은 ‘교실증축 공사장’이란 시가 있다. 나는 한국의 노동 현실과 우리 학생들의 진로 문제를 고민할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리곤 했다.

교실증축 공사장 근처에는
아이들이 노는 시간마다 둘러서서
무슨 큰 구경거리나 되는 듯이 낄낄거리며
술참 때가 되어서 빈 터 각목 늘어놓고 둘러앉아
막걸리 들며 잇몸 드러내고 웃는 웃음을 따라 웃는다

감독 아저씨가 보이지 않을 때는
각목 조각 주워 던지기도 하고
쭈그러진 막걸리통을 흔들기도 하며
형편없이 초라한 인부들의 모습을
낄낄대며 재미있어 한다

공부 못하면 저꼴이 된다고
떠들고 장난치고 농땡이 치면 저꼴이 된다고
훈계하는 담임선생님의 의도야 어떻던
무서워라, 용식이는 이튿날 결석을 했다
연삭기로 바닥을 다듬는 어머니가 미워
모래 자갈 져나르는 공사장의 형이 미워

열심히 일하는 소중한 삶은 어디 가고
아름다운 수필만 가르쳐야 하는 한 시간이 끝나고
체육성금도 못 내는 처지에
이백 원 저축금도 못 내는 처지에
어머니 일당이 얼마인가 아는 용식이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쪽지를 남겼단다.

공사판에서 검은 땀 흘리는 어머닐 가리키며
기술 선생님 하얗게 웃으셨지
하루 내내 소란한 공사장 옆 교실
검은 땀 흘려서 나라가 잘된 게 아니라
경제개발오개년 잘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고
정의사회 선진조국 건설을 배우는 아이들

새 교실이 완성되면
새까맣게 일하던 사람들 잊어버리고
교실을 지어준 저명한 국회의원 선배님
우러러볼 아이들 속에서
아아, 용식인 다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내 무거운 책가방, 1987> 김종인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 사회와 교육이 ‘노동과 직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얼마나 달라졌고,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10대의 끝자락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직업은 꿈이라기보다는 그냥 '삶'이고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굳이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도 직업을 통해서 일정 부분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이웃과 함께 하며 가끔은 일몰의 저녁하늘과 밤하늘의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산다면 좋겠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실현 가능한 꿈을 꾸고, 그 꿈이 좌절되어도 벼랑 끝에 서있는 것처럼 절망하지 않는 사회, 평범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와 교육을 나는 꿈꾼다.


20150203 글: 눈보라(전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