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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일제고사 없이 불가능한 교육

 

[in 교사] 일제고사 없이 불가능한 교육


    2008년 그간 1~3%의 표집된 학생만 치르던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국 해당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일제히 치르는 시험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일제고사였다. 이 시험은 특히 학교 홈페이지에 의무적으로 성적을 공개하도록 하여 초중고등학교를 서열화시키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시행 당시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 이를 거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결국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자유를 학생들에게 고지했다는 이유로 7명의 교사가 해직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당연히 일제고사는 시행되자마자 전국의 학교들에서 많은 비교육적 행태를 양산했다. 각 시도 교육청 별로 일제고사 성적이 비교되었고, 또 그 안에서 각급 학교들끼리도 비교되었다.

                                     

                                             ▲  2010년 일제고사 대비 초등학교 교문에 걸린 현수막 사진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 대비 학습을 시킨 뒤 오후 다섯시에 하교시키거나, 중등에서는 강제 보충수업과 0교시가 부활되기도 했다. 전교생의 석차를 공개하거나 급식을 성적순으로 먹게 하는 행위 등 정말 많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2011년 세워졌던 충북도교육청의 일제고사 돌탑

                                     

  2011년 말에는 충북도교육청에 일제고사 일등을 자랑하는 돌탑이 세워져서 빈축을 샀다. 이와 함께 도교육청이 관련된 일제고사 비리 의혹도 불거졌다. 담당 장학사가 “책임 지겠다”는 메일을 보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시험과 관련한 힌트를 줬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성적 조작 논란을 비롯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왜 대다수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교사들도 일제고사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지가 궁금했다. 경쟁 논리가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일제고사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 학생들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에게까지,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교란 일제고사를 보는 장소’였기에 그렇다.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른다. 그리고 이 시험은 전 학년이 동일하다. 성적 공개를 하지 않거나, 성취도 평가로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시험이 ‘일제고사’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각 반 마다 가르친 선생님이 다른데도 한 날 한 시에 같은 시험을 본다. 같은 시험을 본다는 것은 성적을 공개하든 등수를 매기지 않든 상관없이 성적과 등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든지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 있고, 한 줄로 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 공개를 못하게 해도, 등수를 매기지 않게 해도 학교에서 친절하게 따로 성적을 내서 알려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시험을 보는 것이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고도 당연한 일일까? 정말로 모든 학생들의 학업 성취가, 점수와 등수로 수치화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일까? 그리고 전학년을 줄세워 인간을 판별하는 시험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덴마크 사회는 시험점수로 진단하는 평가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시험 때문에 시달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폴스베르그 씨는 이렇게 말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평등이란 말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죠. 우리는 무언가를 판단하고 실천할 때 이 단어를 잊지 않고 떠올리죠. 인간을 서열화하는 시험에 흥미를 갖는 사람도 별로 없을 뿐더러 아예 실시하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덴마크 사람들은 순위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 송순재, <덴마크 자유교육>, 민들레


 덴마크 교육을 소개한 책의 일부이다. 그런 덴마크에도 시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험을 대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자세는 우리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9학년이나 10학년이 끝날 무렵 덴마크어와 영어, 독일어, 수학, 물리학의 표준 시험을 보도록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시험을 치르지만, 누구도 이것 때문에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시험의 결과가 아이들 삶에는 거의 무용지물이라,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험을 치르면서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붓는 어리석은 짓을 왜 계속하는지 회의감이 드는 부모나 교사도 꽤 많다고 한다.』  - 위의 책

 

  같은 학교 동 학년 학생들이 한 날 한 시에 보는 일제고사, 덴마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제고사가 학교 교육에 꼭 필요한 것일까?

 교육학에서 ‘평가’는 학습의 중요한 요소이다. 평가란 ‘교수 - 학습’, 즉 가르치고 배운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얼마큼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서 이전의 교육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시험은 ‘입시’같은 선발고사와는 달라야 한다. 그 학년을 들어가는 동 교과 선생님들이 협의를 해서 학생들의 등수를 매길 수 있는 동일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급과 진도가 다르기에 당연히 각자 다른 평가를 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다음 수업과 학습에 참고하는 평가여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일제고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될 수도 없다.

 즉 교육학적 의미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줄세우기’나 ‘변별’, ‘선발’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제고사’ 없는 학교와 교육을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진정한 가르침을 통해 학습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간의 경쟁을 이용해서 학습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콩나물 교실’에서 경쟁없이 교육이 가능했겠으며, 현재도 한국은 교사 1인당 학생수나 학급당 학생수가 많은 편이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전교생을 줄 세우는 이런 평가 외에 교육의 방법은 없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황폐해진 공교육의 현실에 대한 반성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의문조차 품지 못했던 학교 안의 ‘일제고사’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제고사를 통해서만 학교의 권위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교육 관계자들의 각성과 노력 없이는, 공교육은 늘 위기일 수밖에 없다.

 20150210 글: 눈보라(전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