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교사]쓰레기 교과서

 

[in교사] 쓰레기 교과서

 

 

 

 ‘시험이 끝난 뒤 버려지는 교과서’ 2011년 트위터에 올라왔던 사진이다.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1954년 1차 공포된 이래 5년~10년에 한 번씩 7번 개정됐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교육과정을 수시 개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계속 바뀌고 있다.

 그때부터 학교에선 거의 1,2년에 한 번씩 새로운 교과서를 선정했던 것 같다. 교과서 선정은 1~2달 정도 시간을 갖고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다양한 교과서가 학교에  모두 구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동 교과 선생님들이 검인정 교과서를 과목별로 훑어본다.

 문학만 해도 14종 상하 28권, 국어, 독서와 문법 등 그 외의 교과까지 합치면 족히 100 여권에 가까운 교과서를 한 달도 안 되는 동안 모두 살펴보고 각각 점수를 매긴다. 각 교과 선생님이 합산한 점수에 의해 최종적 결정이 내려진다. 당연히 교과서 선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사교육 대책’(?)으로 EBS 교재 수능 연계 방침이 시행되면서 참고서 회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따라서 자기 출판사의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많은 공을 들인다. 보충수업에서 교사들이 ‘어차피 우리가 안 받으면 출판사 영업 사원이 먹는 것’이라며 채택료를 받았듯이, 교과서 채택에도 그런 돈이 오갈 가능성은 많아 보인다. 특별히 그런 일이 없다 해도 우연인지 학교에 자주 얼굴 비추며 참고서를 제공한 영업사원이 속해 있는 출판사의 교과서가 높은 점수를 얻는 일이 많았다. 선정 과정에서 제대로 교과서를 검토할 수 없기에 채택에 다른 변수가 끼어들 가능성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사실 어떤 교과서를 택해도 별 차이가 없다. 어차피 내용과 편제는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별 차이도 거의 없을뿐더러,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개정됐다지만, 그 전에 쓰던 교과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문제는 따로 있다. 자주 바뀌는 교과서는 수없이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가르쳤던 교과서 중에 그런 오류가 없는 것은 없었다. 교과서와 함께 만들어 수업 보조 자료로 제공된 교사용 지도서에도 틀린 내용은 매우 많았다. 새 교과서를 가르칠 때마다 나는 1년 내내 교과서 회사에 전화를 자주 했다.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르칠 것을 우려해서였다. 또 내가 이렇게 하듯이 다른 선생님들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오류를 알려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대부분 올해는 어쩔 수 없고 내년에 참고해서 수정하겠다고 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왜 이렇게 오류가 많은가? 졸속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급변한다고는 하지만, 인류가 쌓아온 지혜는 오랜 시간의 산물이고,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일수록 학교의 역할은 그렇게 축적된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만들어지는 교과서들은 같은 출판사라 하더라도 때마다 필진이 바뀌면서 축적된 노하우 없이 대충 만든 느낌이 강하다. 참고서 만들던 편집 팀이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는 교과서를 자꾸만 새로 편찬하지 말고 그대로 두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출판사의 어느 과목 교과서는 이런 특징이 있다는 것을 교사들이 충분히 평소에 인지하고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교재에 그치지 않고, 교육학적 고려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자체로 한 분야에서 매우 깊이 있는 지식을 담은 권위 있는 교과서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교과서 선정 과정의 낭비적이고 비교육적인 현실은 당연히 바뀔 것이다. 또한 교육 과정을 수시로 바꾸면서 단위 학교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에 필요한 말이 ‘교육은 백년지대계’가 아닐까?

 그러나  교과서를 잘 만들고, 충분히 검토하여 선정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시험이 끝난 뒤의 교과서는 여전히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또 따로 있다.

 현재의 학교 교육에서 교과서는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단순히 레이스를 펼쳐서 우열을 가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애초에 그 안에 들어 있는 지식에 관심이 없다. 꼭 그 안에 무가치한 것들이 들어 있어서만은 아니다.

 수업 중 예전에 배운 작품과 지식을 인용하거나 적용할 때, 나는 자주 이런 농담을 한다. “역시, 너희들은 놀라운 ‘망각력’의 소유자야.”

 학생들은 점수 따기 위한 수단으로 쓸어 담았던 지식을, 시험 끝난 후에는 말끔히 지워버리기 일쑤다.  시험 후에 기억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니라  파편적인 단순 암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만점 맞은 학생도 자신이 그 단원에 대해 확실히 안다는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그저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기 위해 수업을 듣고, 정답 맞히는 요령을 혼자 익힌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국어 수업이라지만, 애초에 문학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고 느껴보려는 호기심, 언어의 구조를 분석하며 그 원리를 알아내 보려는 지적 욕구와는 무관하게, 학생들은 그저 시험 대비를 위해서 수업에 참여했다. 그래서 작가의 감동적인 생애와 작품을 연결한 이야기식 수업을 하게 되면 종종 “그거 시험에 나와요?”란 공격적인 질문을 받았다.

그나마 학생들과 함께 토론 수업이나 역할극 등을 통해서 살아있는 학습을 하려던 시도도, ‘수행평가’가 생겨나면서 대부분 점수를 따기 위한 지루한 작업이 되어버렸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일단 시험 점수와 연관이 되면 학생들은 경쟁심 때문에 호기심과 흥미를 잃었다.

 어디선가 이런 우스개 소리를 들었다. 미국의 오렌지 농장에서 오래 일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자 한국인들이 농장주를 매수했고, 그래서 제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오래 일해서 숙련된 노동자를 식별하기 위해 오렌지 다루는 법을 시험 보는 것으로. 그러나 얼마 뒤 그 제도는 폐지되었단다. 한국인들이 학원을 차려서 오렌지 다루는 법을 단기간에 익혔다나?

  씁쓸했다. 촌지(?)와 경쟁으로 얼룩진 한국 교육을 빗댄 얘기 같아서였다. 사진 속 버려지는 교과서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한국의 학교는 ‘교육’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줄만 세우고 있는 것인가? 아니 ‘줄세우기’를 통해 끝없는 좌절감과 무력감만 심어주고 있는 건 아닌가?

                                                                                                                              20150127글: 눈보라(전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