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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도서관은 맛있어

'섹스 한 번 해보는 게 평생 소원이예요' - 장애인의 성, 그 소외된 세계

이 기사는 '성(性)'과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등 미성년자가 읽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해서 읽을지 말지 스스로 판단해주세요.


34살의 김경일(남)씨는 팔을 다쳐 손이 없다.

'몇 살때 처음 자위를 아신거예요?'
'자위요... 아... 보시다시피 손을 못 써서... 자위라는 게 좀 방법이 독특해서...'

'어떻게 하세요? 발로 하시나?'
'발로 닿겠어요 이게??? 안 닿죠. 남의 걸로 하면 몰라도...'
'글쎄말야... 발도 안 닿고 손도 안 될거고...'
'샤워기 물 세게 틀어놓고... 그냥 거기다 갖다 대고 맞는거죠.'
'샤워기 물 나오는 감촉으로도 자위, 사정이 된다는 거죠?'
'그쵸.'
'와 엄청난 감각이네. 보통 이렇게 피스톤 운동을 해줘야...'
'그래서 제가 아직까지 포경을 안했습니다.'
'아. 포경을 안했어요?'
'포경을 하면 감각이 떨어질 거 같아서...'


지난 9월 24일에 올해들어 다섯번 째 <동네 아저씨 아줌마와 함께하는 인문학 특강 - 콩 심은 데 콩 난다 (이하 '콩강연')>가 동굴에서 열렸다. 이번 콩강연 주제는 '다르다 = 틀리다? 장애 편견 함께 넘기 두 번째 이야기 - 장애인의 성'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은혜'라는 다운증후군 딸을 둔 서동일 영화감독과 장차현실 만화가 부부가 강사로 나섰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상영한 서동일 감독의 '핑크팰리스'는 '장애인의 성'을 다룬 영화였다. 첫 장면부터 노골적인 성 이야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그저 노골적인 성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성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거의 고민해본 적이 없었을 것인 주제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서동일 감독도 사실은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아래와 같은 감독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지방에 살고 있는 한 40대의 중증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남성이 무작정 돈 30만원을 들고 청량리 성매매업소를 찾아갔다.
전동스쿠터에 잔뜩 긴장된 몸을 싣고 붉은 빛으로 물든 유리창 위로 서 있는 여성들을 힐끗힐끗 보다가 한 업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당신같은 사람은 돈을 아무리 줘도 싫다. 가라'는 성매매 여성들의 매몰찬 거부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했다. 
장애가 심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그의 소원은 '섹스 한 번 해보는 것'이었다.

2003.6. 함께걸음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장애인에게도 성(性)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감독 자신도 인지하거나 고민하지 못했던 '장애인의 성' 이야기를,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성에 대해 인터뷰를 하며 3년 동안 영화로 만들었단다. 그들은 어떻게 자위를 하고 어떻게 연애를 하며 어떻게 성생활을 하는 지... 장애인들의 솔직하고 (비장애인에게는) 충격적인 고백들이 이어진다. 


척추손상전신마비 장애인인 33살 이양신씨(여) 이야기다.

'처음으로 성을 저기했던 건... 그 사람을 위해서 제가 커튼을 친 상태에서 오랄섹스를 해줬어요.'
'병실에서?'
'네'
'처음... 다치고 처음 섹스를 가졌는데요. 저는 사실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감각이 없어서... 근데 그 사람은 옛날하고 틀리지 않다고 얘기 했었어요.'
(중략)
'근데 그것보다 마음이 참 고마웠어요. 날 그래도 한 여자로 옛날과 똑같은 여자로 생각해주고...'


이번엔 이길용(43), 김현미(37) 청각장애 부부는 남편이 아내를 졸졸 쫓아다니던 첫 만남 시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성 이야기를 꺼낸다.

(남편)'문제가 있다면... 부부 관계할 때... 듣지를 못하니까 혹시라도 외부에 노출이라던가... 누가 문을 연다던가... 누가 갑자기 왔을 때... 혹시라도 아들, 딸, 누가... 그래서 조심하게 되고... 편하게 느끼면서 하고 싶은데 눈치가... 왜냐면 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니까 서로 계속 얼굴 보면서 해야된다.'


국립재활원 척소장애부부 성재활 소그룹 상담에 참여한 한 여성 척수장애인의 고민이다. 

'제가 성교 중에 혹시 실금을 하지 않을까...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부담감이 굉장히 크고 성교 후에도 바로 제가 제 자의대로 샤워를 할 수가 없잖아요. 이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던가 그런 게 사실은 너무 수치스럽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수치감 때문에 성교 자체를 거부하게 될 때가 진짜 많아요.'


43살의 안중민씨(남)는 자신을 대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식구들부터가 대놓고 말을 해요. 너같은 아이가 무슨 성이냐! 저희 집에서 강아지를 여러 마리 키웠거든요. 제가 강아지 키우는 걸 좋아해서... 강아지는 발정 났을 때 이웃집 암캐하고 접붙이는 걸 아는데, 세상에... 저희들은 성에 대해서 아예 무시를 해요. 그때 확실히 느낀 게 이건 참... 강아지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구나 하고...'


33살의 김지수씨(여)는 연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가 정말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을 때 굉장히 많이 슬펐고요... (울컥) 오래된 얘긴데... 때때로 꿈을 꿀 때도 있잖아요. 남자하고 같이 자는 꿈을 꾸잖아요. 아 그러면 깨고나서 생각하죠.. 내 몸이 호르몬이 필요한가보다... 이 때쯤에 남자를 만나줘야 되는데... 그러니까 꼭 남자를 만난다는 것이요. 섹스를 하는 게 아니라 만나서 재밌게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뭐 같이 영화도 보고 이런 데이트! 그러면서 얻는 활력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되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물론 현실은 안 그래요. 왜냐하면 그게 장애인들한테는 일상적이지 않은 거 같애요.'


서동일 감독은 오랫동안 수소문 해 2003년 6월 '함께걸음'에 난 기사의 주인공을 찾아간다. 48살 동수아저씨. 그리고 동수아저씨와 또 한번의 서울 나들이를 한다. 

그 사이 성매매금지법이 시행되었다.
'네?'
'아이고 너무한다고!'
'너무하다고요?
'그래! 자기네들은 사지가 멀쩡하니까 즐길 거 다 즐기고 우리같은 사람... 우리같은 장애인들은... 씨발! 뭐야! 우리는, 우리같은 장애인들은 사람 아닌가!'
'그러면요 아저씨, 지난번에... 지난번 저희 집에서 아저씨가 제일 하고 싶은 게 총각딱지 떼는 거였는데 이제는 포기하셨다고 그때 말씀하셨잖아요.'
'어... 옛날에는 그때만해도 한창 혈기가 왕성했지! 그런데 이제는 호기심도 다 없어졌고... 이런 거 자꾸 봐가지고... 씨...'
'이제는 호기심도 없어져가지고?'
'응'
'이제 그런 마음도 없어지셨다고요?'
'그래!'
'그래도... 다시 한 번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기회 되면 하고 싶지! 실제하고... 실제하고 그림하고 틀리지! 그치? '
'근데 이제 성매매특별방지법이 발동이 되가지고 시행이 되고 있어서 사실... 이제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건 불법이예요. 이거 저희 잘못하면 성매매 알선으로...'
'진짜? '
'잡혀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래도 한 번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시겠어요?'
'..... 한 번 시도해보지 뭐! 하하하'
'잡혀 들어가도 상관 없겠어요?'
'(한~참 생각) 법은 무섭지? 나 같은 장애인들 막 잡아가지 그치?'


그리고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호주 멜본시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완비한 성매매 업소가 있다.
핑크팰리스라는 이름의 이 업소는 장애인 손님들을 맞기 위해 현관문을 넓히고 경사고, 좌식 샤워기 등 여타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이는 국가가 시행하는 최초의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동수아저씨를 위해
핑크팰리스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핑크팰리스가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 주목한다.
내가 볼 때 호주는 장애인의 성을 인정하는 것 같다.
국가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성은 물론이고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구의 실현은
이 사회가 그 욕구를 인정할 때만이 가능해지리라 본다.

나와 동수아저씨의 욕구는 전혀 다르지 않다.

사실 이 영화는 이런 내용 때문에 영화관에서 정식 상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콩강연에서 영화를 중간까지 본 후 서동일 감독, 장차현실 만화가 그리고 평화캠프나 소풍 같이 장애인들과 함께 활동을 하는 사람들부터 장애인의 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콩강연을 들으러 온 동네사람들 열댓 명이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장애인이 가족 중에 있거나 가까운 관계로 있는 경우, 그 장애인이 처음 성에 눈 뜰 때 당황했던 이야기... 
장애인과 함께 하는 정기적인 행사에서 성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경우 대처하는 방식...
장애인 문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한 번도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
영화 속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장애인의 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
장애인의 부모가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장차현실씨의 다운증후군 딸 은혜가 자위를 하는 것에 대해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한다는 이야기...

그 사이 은혜는 자신의 자립 비용을 벌기 위해 콩강연에 온 사람들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렸다. 대상의 특징을 너무 잘 뽑아내고 그걸 과장하는 은혜의 스타일은 어쩔 때는 캐리커처 당사자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도 한단다. 환불을 요구할 때도 있단다. 하지만 솔직하고 순수한 스타일의 은혜 캐리커처는 5,000원으로 교환하기엔 더 많은 가치를 담고 있어 보였다. 두어 시간 동안 장애인의 성에 대한 편견이 다 깨질 수는 없었지만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은혜의 캐리커처도 매우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다.


[행신톡 페이지 생중계]

* 이 집 딸레미 은혜가 강연 들으러 온 분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줍니다~ https://goo.gl/ikuQyb
* 서동일 감독의 영화 '핑크팰리스' 보고있어요~ https://goo.gl/oeX0nU
* 장차현실 쌤과의 대화 https://goo.gl/8H8Umk
* 은혜씨와의 대화 https://goo.gl/989Vjf


이번 강연 때 보다가 만 '핑크팰리스'는 매달 열리는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 영화관에서 다시 한 번 상영할 예정이다.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 영화관
일시 : 2016년 10월 8일(토) 저녁 8시
장소 : 동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592 세신훼미리빌딩 6층
영화 : 핑크팰리스 (감독 : 서동일)
문의 : 031-972-5444




20160928 글 : 깨굴, 사진 : 파랑, 깨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