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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임신하면 퇴학? 그게 최선입니까?

[in 교사] 임신하면 퇴학? 그게 최선입니까?

                                                                        

 지난달 6일 서울 은평구 거북산 중턱을 파내려가던 경찰이 흰 옷에 싸인 갓난아기 백골을 발견했다. 2013년 9월 살해된 남아였다. 부모는 당시 중학생이던 A 군(16)과 B 양(17). 둘의 가정은 모두 가난했고, 부모에게 임신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키우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이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살해해 산에 묻었다. 형편이 어려워 직접 키우기 어렵다면 아이를 입양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들은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생각했더라도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을 보낼 수 있다’는 현행 법규 때문에 중학생 부모가 입양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 동아일보 2015.2.2일자

                                                                             

 미혼부모의 영아살해는 충격적이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매우 신랄하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증오심이 묻어나는 가혹한 비난이 주를 이룬다. 오프라인에서도 대체로 비슷하다. 염치없이 쾌락에 빠져 일을 저지른, 잔인하고 방탕한 10대들이라는 것이다.
 신중하지 못해서 아기가 생겼을지는 모르나, 그 일이 그토록 비난받을 만한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바로 저 비난 속에 영아살해라는 결과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염치없이 쾌락에 빠져 일을 저질렀다’는 가혹한 비난과 냉대를 견딜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 아기를 유기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살해하는 길이었으리라. 나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차별이야말로 진정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아기를 직접 죽이고 묻은 것은 A군과 B양이지만, 어쩌면 진짜 범죄자는 우리 사회일지도 모른다. 잘 살펴보면 위의 기사 내용 단 몇 줄 속에도, 두 10대 청소년이 겪은 사회적 편견과 폭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국에서는 출산 아동의 1.6%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다. 한국의 미혼모 출산이 이같이 적은 것은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이다. 최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미혼모를 음란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혼모다>, 물푸레복지재단, 연두출판사
                                                                       

 이 책에 따르면, 미혼모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라 한다. 미혼모들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어도 동사무소에 가서 지원 상담을 받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미혼모라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하고, 사회적 낙인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미혼모에 대한 멸시와 냉대는 '경제적 고통'보다 훨씬 끔찍하다.

                                                                              
 만약 저 두 남녀 학생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그들이 마주치게 될 현실은 어떨까? 그 고통은 단순히 집이 없고, 분유 살 돈이 없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각자의 부모에게 의절에 가까운 심한 모욕과 박해를 당하게 될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매장에 가까운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학업도 계속해나가기 힘들다. 최근까지 임신을 이유로 퇴학시키는 학교들이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고통이 단순히 10대에서 끝날까? 현재 한국에서 20대 청춘의 삶의 전망은 혼탁하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학벌에 대한 편견 등등 아이를 낳지 않고도 감당하기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의 20대를 '일자리, 소득, 집, 사랑과 결혼, 아기, 희망을 가질 수 없다' 하여 '6무 세대'라 하겠는가.
 경제력이 없는 나이의 임신과 출산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청소년 미혼부모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정말 ‘경제적 여건’이 필수 조건이라면, 극단적으로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기를 낳을 자격이 없다. 인간의 육체는 나약하며, 생명은 유한하다. 안전하게 아이를 양육할 수 있다는 장담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언제 죽을지,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이혼율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절대적 조건이라고 내세우기에도 민망한 통계이다.
 
                                                                                          
 종종 성폭력이나 절도를 저지르고 보호감찰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있다. 완전한 비밀이란 없는지 결국 소문은 암암리에 퍼진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져도 그들은 그럭저럭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했다. 하지만 임신 사실이 알려진 여학생의 경우는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렵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학생 미혼모 학습권 보장 방안' 보고서(2015년 1월)에 따르면, 학칙 중 이성교제로 인한 처벌 조항이 있는 고등학교의 48.1%가 퇴학을 시킬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임신한 학생의 경우 위탁시설로 옮겨 학업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이지만, 그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 학교 학생의 임신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학교 측에서 꺼려하기 때문이다.
                                                                                     

 서울 학생 인권 조례를 만들 때,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런 조항을 넣으면 ‘임신과 출산이 장려 된다’는 것이다. 학생이 미혼모가 되면 겪게 될 어려움을 예방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이들이 미혼(부)모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편견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는 이율배반이다. 바로 그 차별과 비난이 미혼모가 겪는 어려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혼모를 비윤리적이라 비난하지만, 나는 그런 비난이 더 비윤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미혼부모의 잘못이라면, 자신들이 겪게 될 상황을 예측하거나 조심하지 못한 것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을 차별하고 냉대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낙태와 살생까지 이르도록 하는 그 손가락질이야말로 폭력이 아닌가?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도 미혼부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이미 오래 전에 학교 내에 미혼모 학생을 위한 탁아시설을 만들었고, 유럽 여러 나라는 미혼모를 위한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다.
                                                                            

 갈수록 결혼 연령은 늦어지고, 청년의 삶이 강퍅한 한국 사회에서 몇 살이면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을까? 높은 이혼율과 세계 최저 출산율의 나라에서 이토록 미혼부모에 대해서 가혹한 편견을 유지하고, 공교육 기관인 학교가 나서서 그런 차별에 앞장 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출산과 양육을 책임질 수 없는 10대의 사랑은 범죄에 불과하다고 가르쳐야 할까? 그게 최선인가?


20150423 글:눈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