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라는 기능은 인간에게 주어진 큰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매일 많은 일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 중에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있겠지만,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도 있게 마련이다. 슬픈 일들, 불쾌한 기억들을 모두 머릿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망각’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심각한 정신병을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고통스럽지만 잊지 말아야할 기억들도 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세대를 넘어선 사회구성원 전체에게도 해당된다. 그런 기억들 중 하나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 중 한 대학 강연에서 ‘군 위안부 강제 동원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과거 일본군 만행의 피해자들이 아직도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싸워가며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청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진실을 회피하며 ‘사회적 망각’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본 정부와 대비되는 국가가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이다. 독일은 전후 나치군부의 유태인 학살 등에 대한 범죄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과거의 과오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종전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치 전범들에 대한 추적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학생들은 역사교육 시간에 나치군부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범죄 행위를 2년에 걸쳐 배우고 있다. 또한 대도시들 곳곳에는 유태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박물관과 공원, 위령묘들이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메르켈 총리의 사죄처럼 독일의 정치지도자들은 과거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지속적인 사죄를 하고 있다.
망각하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아픈 과거지만 독일인들은 잊지 않으려고 이렇듯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기억해야만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집단적 각성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들을 제대로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얼마 전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벌써 3년 째 정부 공식행사와 유가족 및 피해자들의 기념행사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지난 1996년에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피해자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아직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적은 듯하다. 아직 우리 국민 중 10%가 희생자들을 ‘폭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는 5.18 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인식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5.18 희생자들은 잊혀 지지 않기 위해, ‘폭도’가 아닌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상징으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차가운 바다 아래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침몰해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왜 사랑하는 가족들을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현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그들에게 충분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충분한 망각은 필요하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루하루 맞부딪히는 ‘망각의 유혹’과 싸워가며 잊지 말아야할 일들을 기억하고 간직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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