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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톡 늬우스/기인 늬우스

도봉의 ‘종편’을 꿈꾼다...도봉N 마을신문


3년동안 매월 1만부 마을신문 발행

톡톡 도마토리, 월드컵 백태클 팟케스트

16명 운영위원, 자원봉사 배포, 시민기자들

CMS 후원회원 인쇄비 충당, 각종 지원사업도


도봉엔 마을신문. 2009년 6월 16일 첫호에 이어 3년동안 매월 1만부의 타블로이드 신문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정말 신문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한달에 네다섯번을 모였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용감하게 2009년 6월 16일 첫 도봉N 마을신문 창간준비호가 나왔어요.”

올해로 5년차 마을신문. 각자의 일이 있는 지역주민들이 기자, 발행인, 배포, 편집디자이너까지 자원봉사로 참여해 만드는 마을신문이 벌써 47호까지 나왔다. 마을신문과 함께 시작한 마을팟케스트 방송은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올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9일 찾은 도봉엔 사무실은 도봉 마을예술창작소로 사용하고 있는 옛 주민자치센터 건물이었다. 낡은 주민자치센터 건물을 서울시가 리모델링해 도봉구마을지원센터와 주민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도봉엔 팟케스트 방송은 도봉마을예술창작소 3층 스튜디오에서 제작된다. 박용호 다큐멘터리 감독이 지도와 진행을 돕고 김대근 편집위원이 앵커를 맡고 있다. 


2009년 칼국수집에서 의기투합

이창림 발행인이 유럽 여행중이라 김대근 편집위원과 이상호 기자, 박용호 다큐멘터리 작가, 김미연 사진작가가 설명을 맡았다. 김 편집위원은 도봉엔 팟케스트 방송의 ‘간판 앵커’라고. 이상호 기자는 ‘고발뉴스’ 가 아닌 ‘도발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도봉엔 마을신문은 2009년 3월 처음 몇 명의 제안으로 출발했다. 당시 도봉구의회에 의정비 인상과 관련한 이슈가 있었다. 동네 칼국수집에 모인 이들이 ‘우리 동네에도 건강한 마을신문이 있어야되지 않을까’하는 제안을 하게 됐다. 이상호 기자는 “구의원들이 자신들의 의정비를 두배 이상 올렸다. 그런데 도봉 지역 8개의 지역신문에서 단한 곳도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다”며 “그 일을 보면서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을신문 준비팀들은 동네 마라톤 행사를 열어 신문 제작에 필요한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2009년 4월 25일 1회 어깨동무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취지와는 달리 30명 남짓한 인원이 참여해 행사가 끝나고 뒷풀이로 막걸리를 마시고 나니 5만원이 남았다.

2009년 8월 가족 엠티를 갔다. 의기투합한 홍은정 초대발행인과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창간준비호를 두 번 만들었다. 도봉신문 창간 기념 행사를 열었다. 100여명이 넘는 손님들이 와서 300여만원의 돈이 모였다. 2009년 6월 16일 첫 신문은 호기롭게 1만3000부를 제작했다.




도봉엔, 도봉마을에술창작소가 자리한 곳은 옛 주민자치센터 건물. 서울시가 주민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다양한 주민활동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폐지줍는 노인 자전거도 고쳐주고

“도봉구 인구가 36만명, 세대수 13만 가구니까 10가구 중 1가구는 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죠. 그 다음부터는 1만부를 제작해요.” 300만원 모아서 종잣돈으로 창간호를 내기 시작했다.. 2009년 9월 1일 창간호 발간. 첫 탑 기사 ‘브레이크없는 자전거로 폐지줍는 노인’. 첫호에는 사진에 엉덩이만 나오기 하고’

2009년 11월에는 문화마을과 함께 하는 남자들의 김장행사를 열었다. 마을신문 발행과 함께 다양한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었다. 경향신문에서 ‘마을의 부활’이란 제목으로 도봉신문과 도봉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김미화의 라디오 프로에도 소개됐다.

2010년부터는 청소년 기자학교도 시작했다. 3주년 후원주점에는 3000여명이 넘게 다녀갔다. 700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3년동안 밀린 적자를 일부 해소하기도 했다.

‘씨앗회원’이라는 이름으로 CMS 후원회원을 모집해 현재 60여명 정도. 후원으로 신문 인쇄비는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됐다. 마포FM 은평신문 등과 공동 서울시장 인터뷰, 주민 미디어교육도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월 1회. 타블로이드 8면. 1만부를 발행한다. 8면 모두 칼러. 구청에 기타 간행무로 등록. 초대 발행인 이후 3번의 발행인이 바꾸었다. 편집위원 16명이 신문을 발행한다. 시민단체 활동가, 현직기자, 주부, 직장인 등이 참여한다. 재정에 도움을 주는 운영위원에는 지역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발로 뛰는 시민기자와 배포자원활동가, 후원회원들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아파트 누님들이 배포 자원봉사

“아파트에 있는 누님들이 배포자원활동을 맡아줍니다. 100곳 정도에 비치해요. 배포를 하면서 취재도 겸하게 되죠. 자장면집 사장님, 인테리어 사장님, 뮤지컬 배우도 인터뷰하고. 폐지줍는 할아버지, 급식실에서 해고된 할아버지. 바지걸이 만드는 장애인은 하루종일 함께 휴지를 줍고, 바지걸이도 만들며 체험 취재를 진행했죠.”

마을신문답게 주민들이 만들고, 배포하고, 그 안에서 다시 기사를 찾아낸다. 온라인 홈페이지는 처음 2년 운영하다가 접근이 어려워 현재는 블로그로 운영하고 있다. 뉴스레터도 발송한다. 블로그 접속자는 현재까지 15만명 정도로 한달에 8000명 정도 들어온다.

“신문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에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오게 됐어요. 우리 시민기자들이 일간지 기자들보다 먼저 취재해서 기사를 냈죠. 나름 특종이라고 생각하고 자축했죠.”

매번 신문을 낼 때마다 ‘계속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창간행사에서 ‘100호까지 내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온 것 같다고.

‘도봉엔’이라는 제호는 공모를 통해 정했다. ‘마을사람들이 노는 놀이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정했다. 도봉뉴스, 도봉네트워크, 도봉의 여러 가지 소식 등 중이적인 의미가 있다. 재작년에 한호, 전통시장을 기자들이 25시간을 촬영해 25분짜리 영상을 만들었다. 유투브에 올리고,

“발행주기를 격주로 늘리고, 참여도와 인지도, 영향력을 늘리는 일이 항상 고민이에요. 지속 가능성을 위해 유료화도 고민하는데 쉽지 않아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도와주세요.”

이상호 기자의 고민이다.


마을 스튜디오에서 팟케스트 녹화

고민이 많지만 매번 지역이 보물창고라는 걸 확인한다. 팟케스트 방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마침 김대근 편집위원이 참여하고 있는 마을예술창고에 스튜디오가 생겼다. 서울시마을미디어센터에서 마을방송 지원도 교육도 받게 됐다. 도봉구에 살고 있는 박용호 다큐멘터리 감독이 ‘선물’처럼 나타났다.

“도봉구의 종편 마을미디어로 거듭나보자는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네에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산다는 걸 알게 됐죠. 팟케스터 장비는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마침 취재를 하러 간 날 도봉엔 팟케스트 ‘월드컵 백태클’을 녹화하는 날이었다. 월드컵 백태클은 도봉구 주민들 중 월드컵과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1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이다. ‘톡톡 도마토리’ ‘이상호 기자의 도발뉴스’ ‘죽 때리는 노래방’ 등 팟케스트 방송에서는 평범한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수다를 떤다.

‘마을신문, 지리적 개념을 너머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주민이 스스로 만드는 종이신문.’ 도봉엔 사람들이 나름대로 정의한 마을신문이다.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며 ‘스스로’ 지역의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는 도봉엔 사람들. 3년동안의 마을신문 발간, 재미있는 팟케스트 방송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열정과 신명나는 동네살이가 부럽기만 하다.


/글, 사진 로켓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