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신톡 늬우스/기인 늬우스

소통불능의 끝판왕, 햇빛21단지에서 일어난 일...

소통 제로, 경비비 인상 제로...

주민들이 뿌린 소식지 경비원시켜 수거,

회의 참관 주민들의 발언권 요청 모두 묵살.

21단지, 경비원 임금 정부지원금 13만원만 인상 결정.

 

나는 햇빛마을 21단지 주민이자 행신톡 기자다. 우리 단지에서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비원 임금 조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이 모여 여러가지 활동을 해왔다. 나는 주민으로서, 기자로서 이 과정에 참여하고 취재를 해왔다. 그리고 지난 12월 21일,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위')에서 경비원 임금 조정을 결정했다.

 

주민이 내는 경비비는 휴게시간 1시간을 늘여서 한 푼도 인상을 하지 않고, 정부가 주는 지원금 13만원만 인상하는 걸로...

 

주변에서는, 해고도 막았고 어쨌든 13만원이 인상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입대위와 관리실에서 추진했던 85,000원 인상보다는 더 많이 올랐으니깐...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자괴감과 비참함이 몰려온다.

 

나를 비롯한 우리 주민들은 사실 이제껏 경비원들이 얼마를 받고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이 별로 없었고, 입대위에 어떤 동대표가 들어가 있는지, 회장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이제 막 관심을 갖고 의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을 보살펴주는 경비원들도 우리 이웃이라는 생각에 최저임금을 받는 경비원들의 해고를 막고 주민이 내는 경비비가 좀 인상되더라도 휴게시간을 늘여서 임금 인상 폭을 줄이는 짓은 하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 의견을 동네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주민토론회를 개최했고 10월에는 이런 의견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50여 세대의 주민 연서명을 받은 주민안건을 발의했다. 12월 입대위 회의 직전에는 우리 단지 모든 세대의 우편함에 소식지를 꽂기도 했고, 12월 입대위 회의에는 여러 명의 주민들이 참관도 했다.

 

10월 14일 행신톡 주최로 열린 주민토론회는 비교적 성공적인 토론회였다. 사람들은 많이 모이지 않았지만 이해당사자들이 대부분 왔기 때문이다. 일반 주민들과 함께, 해고와 임금 조정의 당사자인 경비원, 21단지 동대표를 포함하여 소만마을과 샘터마을의 동대표들이 참가했고, 21단지 관리소장도 왔다. 조례를 다루는 우리 지역 민경선 도의원도 참석했다. 각자 문제의식과 이해관계는 달랐지만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주제는 '소통'이었다. 주민과 주민, 주민과 입대위, 관리주체, 일하는 사람들 등 서로 간 소통이 너무 없다는 데 공감했고, 소통이 좀 더 활발히 된다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참고기사] 최저임금 인상때문에 경비원 해고? 주민토론회에 경비원, 관리소장, 도의원... 다 모여 이야기 나누다. http://hstalk.tistory.com/630

 


▲ 행신톡 주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비원 해고?' 주민토론회

 

하지만 이후 활동들의 결과를 보면 '소통'은 1도 없었다.

 

10월에 발의한 주민안건은 해고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단지의 경비, 미화, 전기, 기계 등의 인원을 감축하지 말라는 주문과, 감축하려 한다면 주민 의사를 물어서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주민발의 안건은 사실상 부결됐다. 이 논의를 12월 회의로 미루기로 결정하면서, 발의 조건(20세대 연서명)의 두 배를 훨씬 넘긴 주민들의 뜻이 폐기돼 버린 것이다.

 


▲ 햇빛마을 21단지 50여명의 주민들이 연서명을 하여 발의한 주민안건(10월)

 

이후 우리는 21단지 관리소장을 통해 우리의 의견을 명확히 전달했다. 인원 감축 안은 다행히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해고는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제대로 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경비비 부담이 필수적이었다. 정부지원금 13만원을 받는다 해도 세대당 2~3천원 정도의 인상이 예상되었다. 우리는 주민들이 감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대위 회장과 관리소장은 경비비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채 정부지원금 13만원을 받아서 그 중 85,000원만 경비원들에게 주는 안을 밀어부쳤다. 이 안은, 잘 지켜지기 힘든 휴게시간을 또 1시간 늘여서 9시간 30분으로 만들고, 게다가 정부지원금 13만원 중 45,000원을 주민들이 가로채겠다는 안이었다. 사실상 '삥땅'이다. (결과적으로는, 휴게시간 1시간을 늘여 경비비 인상을 하지 않고, 정부지원금 13만원을 받아 그대로 경비원, 청소원들에게 주는 것으로 되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소식지를 만들어 12월 19일, 21단지 모든 세대 우편함에 꽂았다. 하지만 이 소식지는 다음날 관리실의 지시로 (잔인하게도, 문제의 당사자인) 경비원들의 손에 의해 수거되고 말았다. 이유는 우편함에 뭔가 꽂으려면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약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규약에는, 주민자생단체의 활동에 관한 내용도 함께 명시되어 있다. 10인 이상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주민자생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2년 전 쯤 만들어진 이 내용에는 아무런 관심도, 해석도 없고, 주민 활동을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그저 해오던대로 규제 행위만 반복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참고기사] 주민이 이웃들에게 배포한 소식지, 관리실이 모두 수거... 경비원 최저임금 관련 회의 앞두고 주민 의견 묵살 의도인가? http://hstalk.tistory.com/640

 


▲ 햇빛마을 21단지 주민들이 같은 단지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우편함에 꽂은 소식지

 


▲ 다음날 관리실 지시에 의해 수거된 소식지들. (관리실에 돌려줄 것을 요청해서 받아왔다)

 

드디어 12월 21일 입대위회의... 무려 8명의 주민들이 참관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직원들의 임금 조정 안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의견을 내기 위해서였다. 입대위는 이 안건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2번째 순서에서 마지막 순서로 논의를 미뤘고 결국 참관한 주민들은 2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단지 입구 '햇빛 21단지' 현판에 조명을 달아 예쁘게 꾸며보자, 소나무를 잘 손질해서 보기 좋게 만들어보자는 등 단지 외관에 관한 안건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장기수선충당금을 세대당 '50원' 올리자는 안건에서는 치열하기마저 한 논박이 오갔다. '50원 내가 내고 말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처음 입대위 회의를 접한 참관인들은 마치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듯 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려 상정된 직원 임금 조정 안건... 안건의 특성 상 숫자가 거의 전부인데도 '숫자가 많아 얘기만 듣고 안건 이해가 어려우니 참관인에게도 자료를 배포해달라'는 요구는 바로 묵살되었다. 어찌어찌 오가는 이야기만 듣고 따라가고 있던 나는 두 번에 걸쳐 발언권 요청을 했다. (참관인은 입대위 회장(의장)의 동의를 받아 발언할 수 있다.) 의결을 하기 전에 의견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회장에게 발언권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저 모두 묵살당했다. 의결 이후에라도 회의가 끝나기 전 발언권을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의 추측은 매우 순진한 거였다. 입대위 회장은 결국 폐회를 한 후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했고 발언권을 회의 중 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회의가 너무 길어졌고 밥 안먹은 동대표들도 있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다. 회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참관인들은, 입대위 회장에게는 그냥 투명인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며 '소통 불능'을 절실히 느꼈다. 동대표들로 구성된 입대위는 주민 간 소통을 위해 배포한 소식지를 문제삼으며 관리실의 관리 소홀을 탓했고 의견을 내러 회의에 온 주민들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었다. 주민발의 안건이 부결됐을 때도 놀랐지만 발언권마저 줄 생각을 안하는 입대위의 모습은 솔직히 상상을 하지 못했다. 함께 소식지를 만들고 꽂고 참관했던 주민들도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따지면 이런 소통 불능 입대위를 뽑아놓은 우리 주민들의 탓이다. 그래서 더욱 자괴감과 비참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우리 21단지 주민들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경비원 임금 인상안을 뒤집기 위해 재심의 청구나 주민투표안 발의 등을 검토했지만 입대위가 최종 결정을 하게 되어있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소통 부재... 이 문화는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소통 불능 입대위, 입대위와 함께 움직이는 관리실, 이 시스템 밑에서 그저 해고만 안되길 바라는 경비/청소원들, 주민자생단체 활동에 대한 법과 규약 해석을 의뢰했지만 나 몰라라 하는 국토부와 지자체... 이런 소통 불능 문화를 상생하는 문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들이 움직여야 한다. 위의 활동들은 그 움직임의 첫 출발이 될 것이다.

 

 

2017.12.29. 깨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