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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톡 늬우스/짧은 늬우스

주민이 이웃들에게 배포한 소식지, 관리실이 모두 수거... 경비원 최저임금 관련 회의 앞두고 주민 의견 묵살 의도인가?

19일 밤 10시, 행신동의 햇빛마을 21단지 아파트 주민들 여러 명이 ‘우리 21단지 경비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라고 적힌 소식지 다발을 들고 각 동 우편함을 돌았다. 하지만 880세대 주민들의 우편함에 꽂힌 이 소식지들은 바로 다음날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복수의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모두 수거해서 관리실로 가져오라는 관리소장의 지시가 있었단다. 이에 관해 관리소장에게 사실 확인을 요구했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 우편함에 꽂힌 '우리 21단지 경비아저씨에 관한 이야기' 소식지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 인원감축이나 과도한 휴게시간 확대가 예상되자 이를 우려한 21단지 주민들이 올해 여름부터 카톡방을 만들었다. 최저임금이 말 그대로 생계를 꾸리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임금인데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애꿎은 경비원들을 해고한다는 소식이 전국 곳곳의 아파트 단지에서 들려왔다. 바로 옆 24단지에서는, 주민들의 반대로 인원 감축은 피했으나 휴게시간을 늘여서 관리비 인상 폭을 줄이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 내 경비원 휴게공간은 매우 열악하고 휴게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데다가 2015년 최저임금 인상 당시 휴게시간을 이미 늘일대로 늘인 곳이 많아서, 휴게시간을 또 늘이는 것은 경비원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직접적인 피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카톡방에 모인 21단지 주민들은, 중앙정부도 나서서 경비원 최저임금을 13만원 지원하겠다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2~3000원의 관리비를 덜 내기위해 휴게시간을 또 늘이는 건 여러 모로 부당하다는 의견을 모았고, 19일, 이를 소식지로 만들어 배포했다. 21일 7시에 이 안건을 다룰 입주자대표회의가 예정돼 있어서 이웃들에게 이 소식과 의견을 급히 전달한 것이다.

 

이렇게 배포된 소식지를 관리소장이 경비원들에게 일괄 지시해서 바로 다음 날 재빠르게 수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소식지 작성과 배포에 참여한 주민들은, ‘관리소 허락받고 소식지 넣으라는 얘긴데 영업목적도 아니고 주민 소통목적 소식지도 그딴 식으로 걷어가야만 하나요? 그럼 성당이나 마트, 은행 같은데서 우편함에 넣는 전단지는 왜 안 걷어가죠?’, ‘경비아저씨 당사자 문제인데 그걸 경비아저씨에게 지시한 건 너무 한거 아닐까요...’, ‘우편함에서 걷어가는 거, 남의 물건 훔쳐가는 거랑 같지 않나요? 우편함에 들어간 이상 그건 각 세대의 물건입니다. 우리 집안에 날아들어온 쪽지죠. 문제 삼아도 그 집 사람이 문제 삼아야지 제3자가 무슨 근거로 꺼내갑니까’ 등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1단지 관리소장은 행신톡과의 통화에서, 관리규약 제53조(관리주체의 동의 기준)의 2항 ‘광고물/표지물 또는 표지를 설치하거나 부착하는 사항’에서 ‘입주자등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도 관리주체의 동의 대상이라며 근거 규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규정을 말 그대로 해석하더라도 아파트 현관 앞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에 '설치/부착'하는 경우에 대한 제한일 뿐이다. 게다가 주민들이 의문을 제기했듯이 상업적 목적의 우편물들을 방치하는 행태와도 상충되는 상황이다. 또한 주민 간 (비상업적) 소통을 관리주체가 좌지우지한다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 왜냐면, 공동주택관리법 제21조 제1항 '공동주택의 입주자등은 입주자등의 소통 및 화합 증진 등을 위하여 필요한 활동을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고, 이를 위하여 필요한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다'에 배치될 뿐 아니라, 21단지 관리규약 제39조 제1항 '단지 내 공동체(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구성원 10인 이상의 자생단체의 구성 및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주민에 대한 지원은 못할 망정 오히려 방해 행위로 소식지를 모두 수거한 것은 규약 위반이자 상위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 12월 21일 입주자대표회의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직원급여 인상의 건'이 안건으로 올라와있다.

 

한편, 소식지를 작성/배포한 주민들은, 관련 내용으로 50여명의 연서명을 받은 주민안건을 10월 입주자대표회의에 상정한 바 있다. 하지만 입주자대표회장과 동대표들은 이를 보류하고 12월에 다시 논의하자고 결정했었다. 12월 21일에 있을 회의에서는, 휴게시간을 1시간 늘여서 관리비 증가분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안은, 정부지원금 13만원을 받아 경비원들에게 8만원만 주고 나머지 5만원은 주민들이 떼어먹는 꼴이 되는 셈이라, 주민들의 문제제기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참고기사
[한겨레21] 아이의 동선, 어른의 시선(2017.12) https://goo.gl/pnXpPs
[행신톡] 최저임금 인상때문에 경비원 해고? 주민토론회에 경비원, 관리소장, 도의원... 다 모여 이야기 나누다 (2017.10) http://hstalk.tistory.com/630
[행신톡] 햇빛21단지 경비노동자, 올해 휴게시간 늘고 임금 올라간다??? (2015.1) http://hstalk.tistory.com/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