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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교장제도와 ‘학교 성추행’

[in 교사] 교장제도와 ‘학교 성추행’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고등학교에서 여교사가 여학생의 속옷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진다는 얘기였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서라 했다. 그녀는 심지어 학생의 치마 속에 손을 넣기도 했다. 학생들은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다. 틈만 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교사였고, 여교사가 여학생에게 하는 이런 행동이 ‘성추행’에 해당하는지를 잘 몰라서이기도 했다.
 좀 더 오래 전에 들은 사례도 있다. 한 중학교 남교사 얘기다. 나이 지긋한 이 교사는 남학생들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만진다 했다. 수업 중 대답을 잘한 학생들에게 칭찬이라며 한다는데, 학생들은 불쾌감을 느꼈지만 역시 교사에게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런 경우 직접 말하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믿을 만한 선생님에게 호소한다. 그 얘기를 들은 교사들은 어떻게 할까? 그들은 이 일을 쉽사리 문제 삼지 못한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학생들 말만 믿고 동료를 고발한 교사로 몰리게 되고, 학생들도 나중에 다른 교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걱정되어 진술을 번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외부에 신고하거나 학교장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부 기관에 신고할 경우 ‘학교 일을 외부에 알린 자’로 간주되어 정작 성추행을 한 교사보다 더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자기 학교 일을 외부에 알린 ‘내부고발자’를, 성추행 같은 일을 저지른 자보다 더 비난하는 학교 분위기 때문이다. 학교 내 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최우선이 된다.

 왜 그럴까? 학교 내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는 교장이다. 학생에 의한 폭력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학생을 개별 지도한 적도 없고, 그 학생 이름조차 잘 몰랐던 교장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이렇게 교장은 학교 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존재이면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교육법은 학교장에게 무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육 및 행정에 관한 업무는 교장의 결정권 하에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초중등교육법 20조는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하여, 크게 보아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육과 행정 업무는 교장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교장은, 학생․ 교사 ․ 학부모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일도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다.
  한편 교사의 잘못이나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사고의 최종 책임자는 교장이다. 그래서 무슨 큰 사건만 나면 교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당연시된다. 그러다 보니 교장은 지극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으며, 학교 내에서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쉬쉬하며 무마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된다. 이런 사정으로 교사가 학생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계획하거나 지방으로 단체 봉사활동을 떠나려 하면, 허가해 주지 않는 학교장들이 많다. 따라서 폭력 사건이나 성추행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때, 많은 학교에서 가해자는 내버려둔 채 피해자를 설득하기 일쑤다. 일어난 사건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교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런 사례도 있다. 교장이 기간제 교사들을 모아 놓고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얘기하던 중, 한 젊은 여교사에게 ‘그렇게 화장 진하게 하고 다니면 남학생들이 선생님의 벗은 몸을 상상한다.’ 라고 했다. 그 교사는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지만, 권위 앞에 약자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교장이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서 지도한다며, 여고생들의 가슴에 있는 이름표를 꺼내주거나 바로잡는다며 가슴을 만진다는 얘기도 들었다.
 교장 승진 과정은 수업과 학생지도 같은 교육적 전문성이나 인품과 무관하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윗선에 잘 보이는 것이고, 각종 연수 등으로 점수를 올리는 것, 세 번째로는 행정업무를 깔끔히 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지도와 수업은 방치한 채 승진을 위한 경쟁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그 결과 교장 중에 이런 수준 이하의 인물도 꽤 있어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교장을 포함한 고등학교 교사 5명이 2년 넘게 여학생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게 된 것은 교장이 가해자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교장은 이 사건을 덮으려고만 했을 것이다.
 한편 이 학교는 신설학교로 지역사회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입시전문가로 알려진 교사를 특별히 모셔왔다. 그리고 신설학교로 입시율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 학생들을 관리했다. 과도하게 벌점이 부과되었고, 학생 징계 또한 많았다. 한 해에 20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권고 자퇴 처리됐다. 학교 선택제 아래 비선호 학교가 되어 하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셔온 입시전문가는 성추행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고,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는 학생들의 입을 막았다. 가해자 교사들을 보면, 교장을 포함해서 모두 학교 안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거나 입시 비중이 높은 과목을 담당한 권위적인 존재였다. 어이없게도 그 중 한 명은 성폭력고충처리위원회 책임교사였다.
 와중 교육청 감사관인 장학사가 술을 마시고 조사를 벌이다 피해자인 여교사를 또 성추행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단순히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부, 교육청도 관료 조직 가운데 권위적이기로 이름 높은 곳이다. 공립학교에서 대부분의 교장들은 교장이 되기 전에 장학사를 거친다. 비민주적인 구조 속에서 승진만을 바라보고 일했던 행정가로서의 교장이 학교에 부임해 모든 교육활동을 책임지는 것이다. 당연히 교육활동보다는 자리 보존과 권력 행사에만 관심을 둘 가능성이 높다.

 

 이 학교의 성추행 사건을 들여다보면 우리 제도교육의 핵심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등학교가 입시 학원으로 전락하면서 학생 인권은 간데없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는 성추행의 빈발과 은폐에 한몫을 했다.
 단지 성추행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이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시점에 처해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이런 곳에서 ‘교육’이란 것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시 의회 교육위원회는 “학교장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위가 집중되어 있어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학교 구조가 이번 사건의 피해를 더 키운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학교 내 조직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분산하고 교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조직 문화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교육청의 약속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장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한 교육법을 하루바삐 개정하여 교장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문제가 많은 교장승진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교권이 살아나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교장과 교육 관료의 원격조종에 의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에 불과한 교사에게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근무평가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장의 권력을 견제할 만한 기구들이 학교 안에 있기는 하지만 임의 기구에 불과하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같은 법적 기구 역시 교장이 깊숙한 개입으로 선출되어 교장을 보좌하는 역할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대체 수업과 교무에 관하여 교장 한 사람의 독단이 교사들의 민주적 협의에 의한 결정보다 우월할 이유가 있는가? 무엇보다 교직원 회의에 법적 권한을 부여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교사들이 교육 전반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교단을 민주화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살고 학생들이 산다. 우리는 한시 바삐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로봇에게 교육을 맡길 것인가, 교사들에게 교육을 맡길 것인가?

 

 2015년 1월 교육부는 연구비 6억을 들여 ‘국가수준 성교육 표준안’을 각급 학교에 배포했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 급별로 공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반드시 성취해야 할 성교육의 준거’를 마련하여 내려보내고, 이에 따라 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배포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성은 돈, 여성은 몸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등)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초등1~2)거나 “여성은 한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반응하는 데 견줘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들과 널리 성교할 수 있다”(고등)
어이없게도 성폭력을 합리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자, 교육부는 극히 일부만을 수정한 뒤, 오히려 이 표준안에 따라 교육할 것을 각급학교에 더욱 강요했다. 반드시 성교육 표준안에 따라 성교육을 실시하고 외부강사의 표준안 준수여부를 모니터링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내용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부의 오만한 태도이다. 각급 학교와 교사들을 자신들이 만든 표준안에 따라 교육하는 도구나 로봇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성추행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교육계의 권위주의가 만든 병폐 중 극히 일부이다. 문제의 뿌리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아울러 성추행이나 폭력, 인권 유린 같은 학내 문제는, 즉각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투명하게 해결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더이상 학교가 외부와 단절된 교장 1인 천하가 되어서는 안된다.

20150825 글:눈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