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긴…, 책 읽다 스르르 잠드는 거지” | ||||||
고양시이동도서관 ‘단골’ 박영희 할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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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나베 가즈오 책 좀 가져다 줘요. 무슨 책이긴…, 연애소설이지.”
손잡이가 닳은 지팡이를 짚고 박 할머니가 이동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10년 전 고양시로 이사하기 전, 서울에 살 때는 주로 주한일본대사관 도서관으로 책을 읽으러 다녔다. 고양시에 이사 온 후에도 몇 년간은 한 달에 두 번 지하철을 타고 일본대사관에 찾아갔다. 일제강점기에 중등교육까지 받은 할머니에겐 한글보다는 일본어가 편해서였다. 일본책 중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추리소설과 연애소설. 이유라면 흥미진진해서다. “추리소설은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긴장되거든. 연애소설? 참 좋지. 자잘한 재미가 있잖아. 한때 나도 사랑을 해봤으니….” 할머니가 다시 한 번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백 내장 수술에 관절염에, 서울 나들이가 여의치 않던 차에 집 앞까지 찾아와주는 이동도서관을 알게 됐다. 한글로 된 책에 점차 흥미를 붙이게 된 것도 이동도서관 덕분이다. 고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박 할머니가 유년기를 보냈던 193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어서 더 애착을 느낀 작품이다. “17년 동안이나 쓴 작품이라잖아. 그때의 생활풍습이 이랬구나 싶고, 힘들게 산 여자들 얘기가 마음 아프고…. 작가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어 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박 할머니는 지금까지 책을 삶에서 떼어놓은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여유롭게 산 세월은 아니었다. 30여 년 전, 혼자 살게 된 후부터는 책이 가족이자 벗이 됐다. 외롭고 곤궁할 법한 생활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것도 책이었다. 박 할머니 집엔 책이 많지 않다. 거의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때문에 오히려 없는 편이다. 할머니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아는 이웃이 종종 책을 챙겨다주기도 한다. 얼마 전부턴 친구가 빌려준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기 시작했다. 할머니 표현대로라면 ‘옛날 분(조정래)이 쓴 책’이어선지 한글보다 일본어가 여전히 편한 할머니 눈에도 쏙쏙 잘 들어온단다. “외로울 게 뭐 있어. 내가 체념을 잘 하나봐. 저녁 늦게까지 책을 뒤적이다 스르르 잠이 드는 거지. 이젠 책이 없으면 불안해.” 고양시이동도서관=정보이용에 불편을 겪는 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시민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차량형 도서관. 고양시는 현재 대형버스 2대와 5톤 트럭 1대를 운영 중이며 6만40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이동도서관은 온라인(www.goyang-smu.or.kr/library) 이나 현장에서 가입 신청을 한 후 이용하면 된다. 도서관 운영 일정표는 고양시이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역마다 2주에 한 번 운행. 회원증 1개당 3권 대출 가능, 대출기간은 14일(2주). 문의 031-906-53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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