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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도서관은 맛있어

'엄마 말 들어라!' 소리지르기 전에 아이 말을 들어보자~ - 박문희 샘의 느티나무 도서관 콩 강연

일명 '콩 강연' 3탄!

'콩 강연'은,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 도서관에서 동네 엄마아빠들을 위해 마련한 인문학 강연 '콩 심은 데 콩 난다' 강연의 줄임말이다. 27일 토요일 5시에 세 번째 콩강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콩강연의 주인공은 마주이야기 교육 전문가 박문희 샘이다. 어린이집을 35년 간 해오고 계시다는 박문희 샘이 입을 열자마자 나는 바로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말투가 대박이시다...







"세월호에 안에서, 말 잘 듣던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갔냐"

"왕따 당하는 아이들은 왜 자살을 선택하게 되냐"

"학교 공부 잘 한다는 아이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왜 죽을 쑤냐"


박문희 샘이 자신의 소개를 다음과 같이 하셨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인물도 빠져~, 공부는 지지리도 못해~, 아주 느려 터져~' 라는 말을 매일매일 듣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남아서’ 예쁘고 젊은 엄마아빠들 앞에 서서 강연을 하고 있네요~"


글쓰기 교육을 어떻게 시킬지 궁금해서 온 부모들을 놓고 대체 무슨 이야길 하시려는 걸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거다.


"글쓰기 교육은 말하기 교육이다.

말하기 교육은 그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면 저절로 된다"


박문희 샘은 아직 학교 교육에 '찌들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말'을 들려주신다.


에피소드 1. 소중한 막대기

6살 지형이가 놀이터에서 막대기를 하나 주었다. 그랬더니 6살 민혁이가 바로 달려와서 말한다.

민혁 : 그거 내꺼야!

지형 : 여기서 내가 주었는데 왜 니꺼야!

민혁 : 아까 정선이한테 내가 맡겼단말이야!

하지만 정선인 그 자리에 없고 둘은 싸운다. 아이들이 싸움 구경 하러 몰려든다. 거기에 정선이가 있다.

정선 : 아~ 그거~ 나 화장실 가느라구 거기 놔뒀어~

아이들끼리 토론(?)이 이루어지고 지형인 결국 막대기를 득템한다.

지형인 효율적으로 땅을 팔 수도 있고 공격/방어도 할 수 있는 이 소중한 막대기를 유치원 끝날 때 까지 손에 들고 있다.

화장실 가느라 내려놓을 수도 없다. 그럼 뺏기니깐...

유치원 차를 탈 때 박문희 샘이 그 막대기를 맡아줄 테니 유치원에 놓고 가라고 하지만 지형인 거부한다. 너무나 소중한 막대기이기 때문이다.

지형인 막대기를 들고 유치원 차에 탄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하자 엄마가 기다리고 서있다. 지형인 내리자마자 이 소중한 막대기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걸 어떻게 득템하게 됐으고 또 어떻게 고생해서 지켜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들고 왔는 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참이다.

하지만 지형이가 막대기를 들고 내리는 걸 보자마자...

엄마 : 야! 그딴 거 좀 집에 가져오지 말라 했지!!! 집이 쓰레기통이야!!!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지형 : ...


에피소드 2. 언니 옷 살 때...

7살 현지는 항상 언니 옷을 물려받아 입는다.

엄마 : 딱 맞네~~~ 이 옷 입어~ 민지(언니)야~ 니 옷 사러 가자~

현지도 따라 나선다. 엄마와 언니는 옷을 열심히 고른다. 입어보고 대보고...

민지 : 엄마~ 이거 어때?

엄마 : 예뿌네~

현지 : 난 마음에 안들어...

엄마, 민지 : 니 옷 사는 것도 아닌데 왜 니가 뭐라 그래~~~ 

이런 경우는 첫째 옷을 물려입는 둘째가 있는 가정이라면 항상 일어난다. 방식은 다르지만 동생은 항상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 대해 전 세계 어느 어른도 시원한 해결책을 내 놓지 못했다. 그런데 현지가 정확하고 시원한 해결책을 내 놓는다.

현지 : 언니 옷 사는 거지만 그 옷 어짜피 나중에 내가 입을 거니까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해!!!


에피소드 3. 라면 말고 컵라면!

7살 지훈이가 엄마한테 이야기한다.

지훈 : 엄마~ 나 이제부터 라면 말고 컵라면 줘요~

엄마 : 왜? 라면이 더 맛있지 않니???

지훈 : 라면이 더 맛있는데, 라면 끓이면 엄마가 훨씬 더 많이 먹잖아!!! 

라면 같이 먹을 때 엄마 그릇엔 수북~ 아이 그릇엔 찔끔~ 담아본 적 있을 것이다. 지훈에게 컵라면은 자신의 것을 지켜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에피소드 4. 다~ 사주는 아빠

7살 이호는 항상 아빠에게 이것 저것 사달라고 조른다.

이호 : 아빠~ 이거 사줘~ 저거 사줘~

아빠 : 안돼! 아빠 말 잘 들으면 사줄게.

이호 : 치~ 난 이 다음에 커서 아빠가 되면 내 아들한테 다 사줄거야~ 말 안 해도 미리미리 다 사줄거야~ 이것 저것 다 사줄거야!!!

이호는 벌써부터 이상적인 아빠상을 지금의 아빠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


에피소드 5. 빼빼로 상주기

6살 아윤이가 빼빼로를 들고 있다. 엄마 아빠에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빼빼로를 주겠다고 한다. 아빠가 이겼다.

아윤 : 아빠는 이겨서 기분 좋을테니깐 져서 기분 나쁜 엄마한테 빼빼로 줄래~ 그리구 아빠가 불쌍해 보이면 엄마는 그 빼빼로 나눠먹어도 돼~

뭐든지 이긴 사람한테 좋은 게 가는 세상을 뒤엎는 말이다.




에피소드 6. 아무것도 안 된 엄마

7살 정민이 엄마는 아들이 판검사 같은 훌륭한 직업을 갖길 바래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맨날 이야기한다.

정민 :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 공부 잘 했어?

엄마 : 잘 했지~ (못했다고 하는 부모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민 : 근데 왜 엄마는 아무것도 안됐어???

엄마 : ...

엄마의 꿈을 아들한테 뒤집어 씌우니 이 꼴이 난다.


에피소드 7. 그럼 난 오래 못 살어...

중3 지원이 엄마도 딸에게 열심히 공부를 시킨다.

엄마 : 너 말 안 들으면 엄마 일찍 죽는다...

지원 : 엄마~ 죽지마~ 말 잘 들을게~

엄마 : 그럼 공부해!

지원이는 엄마가 죽는 게 싫어서 열심히 공부한다. 근데 너무 힘들다. 자정까지 하다가 지쳐서 엄마에게 말한다.

지원 : 엄마, 나 인제 그만 하믄 안돼?

엄마 : 엄마 말 잘 듣는다 그랬지???

지원 : 엄마, 내가 엄마 말 잘 들으면 엄마 오래 살어?

엄마 : 그렇지~

지원 : 엄마가 오래 살면... 그럼 난 오래 못 살어... ㅠㅠ


에피소드 8. 그러니깐 엄마 말 잘 들어!

6살 민정이는 돌아가신 아빠 친척의 장례식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민정 : 엄마도 죽어?

엄마 : 그럼~ 죽지. 인간은 다 죽어.

민정 : 죽으면 못 봐?

엄마 : 그렇지~ 죽으면 영영 못봐...

민정 : 그럼 엄마 언제 죽어?

엄마 : 그런 아무도 몰라~

민정은 너무나 두렵다. 엄마가 죽을까봐...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펑펑 운다. 그런데 엄마가 이 기회를 이용한다.

엄마 : 그러니깐 엄마 말 잘 들어!
민정 : ???????


에피소드 9. 예쁘게 살기

6살 지현이가 동화책을 읽고 엄마에게 말한다.

지현 : 엄마~ 엄마는 속이 예쁜 게 좋아~ 겉이 예쁜 게 좋아?

엄마 : 속이 예쁜 게 좋지~

지현 : 난 속도 예쁘고 겉도 예쁜 사람이 될거야~

이 세상 살아가면서 속도 예쁘고 겉도 예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가. 지현이가 고맙고 기특하다. 그런데 엄마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엄마 : 너 고집 피우고 떼 부릴 때 보니까 속이 밉던데!!!
지현 : ...


에피소드 10. 장래 희망

7살 서현이 엄마는 서현이가 커서 훌륭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의 꿈이 궁금한 엄마가 물어본다.

엄마 : 서현아, 커서 뭐 되고 싶어?

서현 : 에스메랄다~

엄마 : 아니~ 그런 거 말고~

서현 : 그럼 엘사~

엄마 : 만화 주인공 말고~ 무슨 일이 하고 싶냐고~

서현 : 어... 그럼... 설거지~

서현이가 본 '일'은 엄마가 하는 설거지였고 그게 물장난 처럼 재밌어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어른은 가르치려 든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런거다.


"그러니깐 엄마 말 잘 들어!"

"이제부턴 아빠 말 잘 듣는다고 약속해!"

"너 왜 이렇게 말 안 들어! 약속해놓고!!!"

"잘 했어? 못 했어? 그것만 말해~"

"집에 가서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우리 교육은 말 잘 듣길 요구하지 아이들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이 없으면 문제를 일으킨다. 어렸을 때 말을 많이 안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하거나 의도와 다르게 표현된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게 지상 최대 목표기 때문에 아이들의 말을 '쓸데 없는 말', '아무 짝에 소용 없는 말'이라 치부한다. 오히려 말이 많으면 '버르장머리 없고 거칠고 가볍다'는 이미지도 입혀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에 감동한다. 모든 게 이야기꺼리다. 어른들이 사소하거나 실현불가능하기에 쓸데 없다고 여기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해댄다. 아이들에겐 막대기가 소중하고 컵라면이 유용하며 패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웅변처럼 암기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가 되고 글이 되는 것이다.


에피소드 11. 동창회와 남편

아내가 동창회에 갔다왔다. 학교 다닐때 날날이에 공부도 지지리 못하던 친구가 지금은 떵떵거리고 잘 산다. 속 터진다. 집에 돌아온 아내...

아내 : (남편에게) 여보~ 내 말 좀 들어봐... 동창회 갔는데 말이야...

남편 : 또 그 얘기야~ 동창회 가지 마!

아내 : 그런게 아니라... 속이 너무 답답해서 그래~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남편 : 맨날 그 얘기가 그 얘기잖아~ 듣기 싫어! 피곤해!!!

아내 : 정말 이러기야? 그 친구가 말이야~ 나보다 공부도 진~짜 못했는데~~~

남편 : 나 잠깐 나갔다 올께... 

아내 : ...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항상 필요하고 소중하다. 박문희 샘이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했던 말을 풀이한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인물은 빠져~, 공부는 지지리도 못해~, 아주 느려 터져~'라는 말을 듣고 살어왔는데, 살다보니 내가 유치원 운영하면서 임대로 내랴, 월급 주랴... 복잡한 산수도 막 하고 있는거예요~ 남편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진~짜 잘해서 지금 좋은 직장 다니고 돈도 좀 벌고 있는데... 남편은 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 하나 제대로 못 풀고 있어요~ 누가 더 훌륭해요???

그리고 내가 옛날보다 인물도 좀 나아지고 산수도 좀 하고 남편보다 문제도 잘 풀고 그러는 게, 이 마주이야기 교육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줘서 그래요. 강의 재미있다고 이리 와라 저리 와라~ 해서 가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너무나 열심히 들어주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기분이 좋아~~~ 그래서 이만큼 살고 있어요~"


처음에 던진 화두 이야기도 풀어내신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 중에서 어른 말 잘 들은 아이들은 죽고 말 안 듣던 아이들은 살았다고 하잖아요? 말 잘 안 듣는 아이들이라기보단 더 정확히는 '판단력'이 있는 아이들이라고 말해야죠. 학교 교육 백~년 받아봐요. 어른 말 잘 들어야 한다는 것밖에 더 배워요? 입시를 위한 문제밖에 못 풀지~ 근데 학교 밖에는 학교에서 푸는 문제보다 백배 천배 더 많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은데... 학교 교육은 그런 건 하나도 안 가르치고 입시 교육만 하니까 그런거예요.

왕따 당하는 이이들? 그 아이들 대부분이 말을 잘 안 해요. 왜냐? 말 해봤자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어렸을 때 부터 그 아이 말을 들어주는 어른이 없었던 거지. 말을 안 하게 되면 결국 자기 혼자 해결해야 하고, 해결 못 하는 지경까지 가면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죠."


박문희 샘은 그래서 아이들의 말을 듣는다. 듣는 것만이 아니라 기록한다. 유치원 학부모들에게 아이의 말을 적어도 보내기도 하고 아이들의 말을 그림으로 그려 전시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말을 모아 책도 내신다. 내 아이가 글쓰기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말 좀 잘 들어!"를 외치는 대신 아이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보자. 그러면 아이들은, 글쓰기를 잘 하게 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잘 풀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박문희 샘이 외치시는 '마주이야기'이다.










이날 강연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강연을 듣던 엄마아빠들은 모두들 날리가 났다. 다 자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우는 건지 웃다가 우는 건지 연신 안경을 들어 눈물을 훔친다. 아내와 남편의 대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할 때는 아내가 힐끔 남편을 쏘아보기도 한다. 다들 일상에서 입에 붙어서 하는 말들인 것이다. 강연을 다 듣고 난 엄마아빠들은 


"오늘부터 '말 잘 들어~' 이 말 못하겠네~"


라며 걱정들이다. 과연 이 강연빨이 며칠이나 갈까? ^^


동영상 보기

* 어린이집 원장샘으로 오래 계셔서 그런지 목소리가 쩡쩡하시네요. 어린이가 된 기분이예요. ^^* https://goo.gl/zCjhsE

* 마주이야기... 가르치려는 교육이 아니라 들어주는 교육!!! https://goo.gl/nCUlHk

* 그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https://goo.gl/SyXgPU


박문희 샘이 쓰신 책



*  맨날 맨날 우리만 자래(보리) http://goo.gl/7swtYx



* 들어주자 들어주자(지식산업사) http://goo.gl/qTkXmW



이 재미있는 '콩 심은 데 콩 난다' 강연은 12월까지 쭈~욱 이어진다. 7월 강연은 18일 토요일 오후 5시에 동굴에서 열린다. 그 유명한 고병헌 샘의 <쿵푸 팬더? 호모쿵푸스! - 평생 교육 시대, 어떻게 살까?>이다. 놓치지 마시길~





20150629 글/사진 : 깨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