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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풀소리의 들메길 이야기

민자 「서울-문산고속도로」! 우리나라 하나뿐인 유적 파괴 위기

민자 서울-문산고속도로! 우리나라 하나뿐인 유적 파괴 위기

<풀소리(최경순)의 들메길 이야기 2>

 

고양시는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의 밀집도가 높은 곳이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문화재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특히 무덤 문화재가 많다. 그런 무덤 문화재 중에 전국 유일한 독특한 문화재가 바로 우리 고양시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당역 인근에 있는 고양시 향토유적 제23호 기응세의 묘이다.

기응세가 누구야? 맞다. 그는 유명한 사람은 아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명문가 맏아들들이 주로 받은 벼슬인 종6품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를 지내신 분이다. 현대로 말하면 서울 경찰청의 중견 간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묘가 유명한 것은 그의 묘에는 임진왜란 전후에 걸쳐 활약한 조선의 명필 한호(한석봉)가 글씨를 쓴 비석과, 당대 명나라 제일의 문장가이며 명필인 주지번(朱之蕃)이 글씨를 쓴 비석이 나란히 있기 때문이다.

 

▲ 기응세 묘/ 뒤에 있는 비석이 한호의 글씨이고, 앞에 있는 비석이 주지번의 글씨이다.

 

한호의 글씨로 된 비석은 선조 19년(1586)에 세운 것으로 기의세의 아들 기자헌이 20세 때이다. 한석봉은 명필로 당대로부터 지금껏 이름이 높으니, 그의 글씨로 써진 비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귀중한 자료일 것이다. 그렇담 명필 비석이 있는데, 왜 또 비석을 세웠을까? 그리고 그 비석을 쓴 주지번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연으로 여기에 글씨를 남겼을까?

두 번째 비석은 선조 39년(1606)에 세워졌다. 당시에 기자헌의 벼슬이 좌의정이다. 대신의 경우 조상 3대에 걸쳐 벼슬을 높여주는 증직이 관례였고, 기자헌의 아버지 기응세에 대해서도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벼슬이 높아졌으니 그에 걸맞은 비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당대 명나라 제일의 문장가이며 명필인 주지번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다. 주지번은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 가면서 경험한 일들을 『봉사조선고(奉使朝鮮稿)』라는 책으로 남겼다. 그 책에 의하면 기자헌은 아버지를 위해 주지번에게 글씨를 청했고, 조선에 우호적인 그는 흔쾌히 허락하고 글씨를 써줬다고 한다.

그렇담 주지번은 어떤 사람인가? 앞서 말한 대로 당대 중국 제일의 문장가이고, 명필이다. 게다가 이전의 중국 사신과 달리 조선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고, 일체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 더욱이 그가 과거에 낙방하고 숙소에 불 때주면서 근근히 살아가던 젊은 시절 중국에 서장관으로 왔다가 가르침과 도움을 주었던 표옹 송영구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가 부친의 시묘살이 하고 있는 익산 왕궁면 광암리 찾아간다. 주지번은 스승의 집에 '멀리서 스승을 추모하고 있다'는 뜻의 망모당(望慕堂; 전북도유형문화재 제90호)이라는 편액을 남긴다. 그리고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허난설헌의 시문집인 『난설헌집(蘭雪軒集)』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당대 중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 망모당(사진 : 익산시청)

 

그런데 이런 귀한 문화재가 있는 기응세 묘가 파괴될 위기에 처해있다. 바로 말 많은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가 이곳으로 지나도록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민자고속도로」는 고양시의 녹지축을 파괴하며, 양분시키기 때문에 고양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민자고속도로」를 밀어붙이면서 문화재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안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국토교통부의 막무가내 행정에 의해서 이런 소중한 문화재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20150319 글/사진 : 최경순(고양들메길 창립자/ 고려공양왕고릉제 제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