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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다른색안경 끼고 입양보기

입양부모라서 대단하다?

다엘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학년모임을 할 때였다.

입양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 학부모가 대뜸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저는 제 자식 키우기도 힘든데."


입양부모가 자주 듣는 '대단하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통념을 반영한다.

별 생각 없이 하는 얘기인 걸 알지만 듣다 보면 언짢은 게 사실이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서 대단한 거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입양가족이 된 후엔 한순간도 남의 아이일 수가 없는데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정상(?)가족과는 다른 임시가족, 일시적 가족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남의 아이'가 키우기 힘들다는 일상적 인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변에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아이를 어찌 자식으로 삼겠는가'라는 또다른 통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낯설고 불확실한 존재에 대한 뿌리깊은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출산으로 얻은 아이에 대한 근거없는 확신이 빚는 결과는 어떤가?

내 몸을 통해 나왔다는 이유로 자신과 동일시하다가 갈등을 겪는 이들이 숱하고, 

이런 갈등은 지금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 엄마의 매를 견디다 못한 고3 남학생이 존속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이때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은, '너 이러면 정상으로 못 살아!'였다고 한다.

엄마는 자신이 규정한 삶만이 '정상'이라고 생각헸던 것이다.

이는 극단적 예이지만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내가 낳은 내 자식과 남이 낳은 자식은 달라!'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들이란,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은 지극히 불확실한 미지의 존재라는 사실.

그래서 옛어른들이 '자식 겉 낳지 속 낳느냐'라는 말을 해왔던 거다.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편견을 뒤집어보면 

입양을 화끈한 이슈로 만드는 또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많은 입양 부모들이 '대단하다'는 말에 반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때로 언론에서 화제가 되고 사회적으로 칭송(?)을 받게 되면 

스스로를 정말 대견하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입양관련 사이트에

가끔 아이를 입양보내려는 생모가 조언을 구해 온다.

그럴 때 입양부모들 가운데 '낳았으니 책임지는 게 엄마다'라면서 질타하는 경우가 있다.

'죽을 만큼 힘들지 않다면, 기르는 게 생모의 도리'라는 확신에 찬 훈계의 바탕은 무엇일까?

 이런 말들은, '낳지 않았음에도 키우는 입양부모는 대단하다'라는 통념과 맞닿아 있다.

'대단하다는 말이 듣기 싫지만 실은 나도 모르게 내가 대단하다!'라는 모순된 자기 고백 아닌가?

 

한편 입양을 고려하는 이가 자신의 입양 동기에 대해 혹시 이기적인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이에 대해, '이기적인 동기만으로 어찌 어머니가 될 수 있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자신의 이타적 입양 동기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경우에만 이런 단호한 훈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확신도 '입양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라는 통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예의를 갖춘 현실적 조언을 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나 역시 입양을 주제로 사회적 발언을 할 때

자신이 대단한 부모로 보이고 싶은 욕망은 없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내 아이를 위해, 사회적 인식변화를 위해 행동한다는 이면에 다른 사심이 없는지를.


이기심이 가득한 자신을 당장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를 인정하고 계속 검열할 수는 있다.

문제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의로움에 취하는 경우이다.


이타적 동기를 자처하며 입양한 사람이 오히려 파국을 겪는 예를 본 적 있다.

보육원 봉사를 다니던 한 독실한 신자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삶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지만 신앙에 따른 사랑을 주고자 아이를 입양했고,

이후 격렬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조기 유학을 보내는 걸로 타혐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성인이 된 자신의 자녀를 원망한다. 

'그토록 많은 것을 주었건만 왜 저 아이가 저렇게 된거지?'

많은 것을 주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주지 못한 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나는 너를 간절히 원해서 입양했다'라는 진짜 동기를 인정하고

부모 자식간 진심을 공유하는 일이다.


입양은 자선도 신앙의 실천도 아닌, 적당히 이기적인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란 걸 깨달았다면,

그래서 아이의 심한 반항을 자신을 돌아보는 근거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입양을 결심하기까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이기적 동기들을 헤아려 봤다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겸허한 자세로 갈등 해결에 임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거나 입양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등 가족을 만드는 일은

개인적 욕구가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욕구와 이기심에 머물지 않고 거듭 노력하며

끈끈한 인간애를 쌓아가는 것이 가족의 사랑 아닌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돌아보고 자세를 낮추면 된다.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었는데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라는 오만함 앞에

자녀가 잘 자라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한쪽으로 입양을 비하하면서 또 한편으론 띄워주는 비틀린 시각에 대해

입양가족으로서 중심을 잡는 일은 딴 것 없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뿐.


20150422 글: 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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