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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교사] 선생님, ‘칼퇴’하시네요?

[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선생님, ‘칼퇴’하시네요?


서울의 고등학교 교사 출근시간은 8시 이전, 학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점심시간까지 근무시간에 포함되므로 8시간 일하고 나면, 퇴근 시간은 4시 30분 전후.

많은 직장인들이 한참 일할 시간에 교사들은 퇴근시간을 맞는다. 하교하는 학생들과 섞여 정시 퇴근하는 교사에게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자연스레 농담을 건다. “칼퇴하시네요?” “에,에,에~칼퇴! 칼퇴! 칼퇴!” 농담이라기보다는 비난에 가깝다.

2008년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은 학교선택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분은 매일 많은 수의 교사들도 밤 10시까지 남아 자율학습 감독을 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학교 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분회 선생님들 간에 굉장히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신임 교장 선생님의 무한 신뢰를 받던 한 조합원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의 방침을 편들고 나섰다.

그분의 주장은 이랬다. ‘외과의사가 수술 환자를 병원에 둔 채 퇴근할 수 있는가?’ 이런 유비추론은 때로 현실을 왜곡한다. 모든 학생들을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환자’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노동조합의 일원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8시간 노동제를 부르짖던 미국 노동자들이 1886년 5월 1일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런 희생에서 비롯된 메이데이 정신은 노조의 기본이 아닌가?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로 1950년대의 미국 노동자들보다도 길다. 우리에겐 ‘저녁이 있는 삶’이란 대선 공약이 나올 정도로 연장 근무가 일상화되어 있다.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늦은 퇴근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의 노동 감수성과, 한국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 노동이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육의 성공’(2008년)에 따르면, 한국과 핀란드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고르게 우수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그는 핀란드 교육에 대해 한 권의 책의 저술하면서, 한국 교육에 대해서는 단 여덟 줄로 정리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한국의 아이들은 정규 학교 수업 이외에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학원과 과외 과열 양상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방과 후의 공부 시간은 일본의 2배 이상이고 핀란드의 3배 가까이 된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학교에서의 연장 노동에 해당하는 야간 자율학습은 의무이며 미덕이다. 이것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개인의 욕망을 이루는데 효과적인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장시간의 야간 자율학습과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또다른 학습을 시키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서 노동자의 시간외 근무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라는 의식을 몸속에 새긴다. 그들은 이런 성장기를 거쳐서 장시간 노동 국가의 국민이 된다. 정시 퇴근하는 교사에게 건네는 학생들의 비난에 찬 농담 속에 들어 있는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한국에서 직장일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 반면, 가사는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된다. 우리의 고정 관념 속에 직장은 기본적으로 남자의 것이고 여성의 주된 일은 가사노동이다. 그리고 남자, 곧 아버지들에게 ‘가정’이란 하찮은 공간이다. 따라서 잦은 회식이나 늦은 퇴근, 주말근무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겐 일상이다. 한편 가사 노동 이외의 여성의 바깥 노동은 ‘덤’에 불과하므로, 동일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이 당연시된다. 여성의 고용율도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그 결과로 우리 사회의 일터에서는 노동자 개인에게 가정이나 육아 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말이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인류 그 자체, ‘생명’이 아닌가?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이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진짜 ‘살고’ 있는 걸까?

정시 퇴근을 수치로 아는 어른들과 교사들에게 배우는 우리 학생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과연 ‘행복’일 수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20150106 글/이미지 : 눈보라(전직 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