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좋은’ 일자리
연간 200만원이 조금 못되던 대학 등록금이, 10년 만에 천만 원 남짓까지 치솟은 2010년, 봄. 입시 압박으로 늘 파행을 겪기에,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아 피해 왔던 고3 수업을 맡았다. 그리고 참 많이 고민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 중 이미 상당한 좌절감에 빠져있는 다수가 앞으로 가게 될 길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대학 등록금 인상에도, 졸업생들이 전하는 대학 교육의 질은 별로 좋아진 것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했다. 대학들은 기업의 기부금을 받아 노골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아탑이란 말을 입에 담는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민하는 것을 그냥 담고 있지 못하는 나의 가벼움 때문에, 학생들과 가끔 이런 얘기를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 낮은 교육의 질, 졸업 후 불투명한 미래... 우리는 대학을 보이콧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한 번은 말이 통할 것 같은 동료 교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학생들이 졸업 후 종사하게 될 직업의 분포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작정 대학에 보내는 게 아니라.” 그때 그 동료가 해맑은 표정으로 던진 무심한 한 마디는 두고두고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해?”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의 할 일은 그냥 열심히 가르쳐서 최대한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 주는 것이란 뜻이었다.
그때 어느 시민단체에서 하는 ‘행복한 진로 학교’라는 기획 강의를 듣게 되었다. 대학 진학률 79%, 재수생까지 포함하면 거의 대부분의 고졸자가 대학을 가는 시대, 그러나 취업의 문은 좁았고, 석박사까지 환경미화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보는 현실이 그래프와 통계자료로 제시됐다. 해답을 찾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기획 강의와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나는 다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주최 측에서 자꾸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게 될 전문직들의 전망이 제시되었다.
서울 강남이지만 임대 아파트 단지 속에 자리 잡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가정 형편은 좋지 않다.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중 절반 이상에게 그런 전망 좋은 전문직 이야기는 달나라 얘기처럼 허황할 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전국 도덕교사 모임에서 만들었던 작은 자료집에는, 인류 최후의 날에 대한 토론 자료가 나온다. 더 이상 인류가 살아갈 수 없게 지구가 파괴된 선택의 순간, 살아남은 12명의 생존자 중 7명만 탈 수 있는 우주선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내가 했던 여러 번의 토론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주제에서 과학자나 대학교수를 제치고 농부를 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업이란 소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노동을 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식 채널e 쌀(2006년) 편을 보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6%이고, 그 가운데 95%를 차지하는 쌀, 이를 지켜온 것은 한국 국민의 6%, 350만 농민이라 했다. 이 영상은 그 농민들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파국을 맞게 되지 않을까 묻고 있다. 농업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필수적인 노동들을 담당하는 사람들, 대중교통 운전자들, 배송업체 종사자들, 생산직 노동자들, 도시의 수많은 자영업과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앞으로 우리 학생들 중 다수가 이어받아 담당해야 할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2006년 우리학교에 취임했던 교장선생님의 첫 훈화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분은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5분 더 공부하면 네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와 같이 우리가 비판해 왔던 구절을 아무런 반성 없이 인용하며, 고등학교 시절 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아직도 현실은 비슷하다. 우리 사회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그런 인식에서 한 뼘도 더 자라지 못했다. 얼마 전 문구를 사러 갔다가 진열대에 놓여 있는 공책을 보고 나는 정말 울 뻔했다. 그 교장 선생님이 인용했던 문구가 새겨진 공책들이 차곡차곡 진열대에 쌓여 있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좋은 일자리’를 찾아내고, 남보다 앞서 새롭게 등장해 각광받을 전문직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 이게 선생의 할 일일까? 자꾸만 우리는 왜 우리의 광장, 우리의 대로에 놓인 오물들과 장애물들을 치우고, 좋은 길을 닦을 생각은 안하고, 우리 아이들을 샛길로 빼돌릴 생각만 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면, 그 직업들을 ‘좋은 일자리’로 바꾸어 주는 것, 이것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그럴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어 보거나 그 길을 찾는 지도라도 제시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기 아이가 안타까워서 하기 어려운 일, 교사라면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교육의 공공성 회복 없이 이 길이 열릴 리도 없다.
20141231 글/이미지 : 눈보라(전직 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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