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교사] 좋은 교사 vs 나쁜 교사? 종이 한 장 차이

[in교사] 좋은 교사 vs 나쁜 교사? 종이 한 장 차이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학생 훈계 한다며 흉기 체벌한 교사’라는 기사를 봤다. 제목만으로도 경악스러운 기사의 내용은 이러했다. 익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바둑을둔 학생과, 이를 구경하던 학생 네 명을 교사가 과일 깎던 칼로 체벌을 했고, 그 과정에서 한 학생이 허벅지에 4센티 정도의 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기사를 읽으며, 나는 이 사건의 복잡한 원인이 기사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고등학교는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서울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자율’학습이란 것은 말뿐이고, 강제로 전체 학생을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간 자율학습 동의서에 학생 사인을 받기는 한다. 그러나 ‘너 때문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깨지니까, 안 할 거면 전학가라’는 협박을 듣고 할 수 없어서라도 하게 된다.

지인의 딸이 몇 년 전 그 자율 학습 때문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엄마, 아무리 자도 자도 학교가 안 끝나.’ 자퇴 전 아이가 남긴 말이라고 했다. 그 애는 나중에 대입검정고시를 보고, 전문대를 졸업했다. 그냥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야간 자율학습이 싫어서 자퇴를 했다는 것이었다.

‘학교 선택제’가 처음 시행될 때, 내가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한바탕 자율학습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학생들을 강제로 남겨서 모든 교실에 불 밝히지 않으면 하위 10%의 학생이 우리 학교로 몰려 올 거란 얘기였다. 공부시키고 고생하는 학교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그런 아이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공교육 기관인 학교의 이런 행태가 옳지 않다고 맞섰다. 하지만, 한편으로 학생들을 정시에 하교시키는 학교에 대해 학부모나 학생들이 ‘공부 안 시키는 나쁜 학교’라는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내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좁은 책걸상에서 하루 8시간의 학습 노동을 마친 아이들이 또다시 1평방미터밖에 안 되는 야간자율학습실 책상에서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인가? 정말 공부가 취미이거나, 지적인 학습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극소수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아이들에겐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건강한 심신을 가진 아이들일수록 이에 대한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통제하는 게 오롯이 고등학교 선생의 몫이다. 쉬울 리가 없다. 따라서 이런 통제를 잘하는 학교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효율적인 통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교사의 능력이 된다. ‘고등학교는 별 것 없어요. 애들 공부할 수 있게 잡아주는 학교가 최곱니다.’ 중3 엄마들의 고입 설명회에 가면,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얘기다.

동료 선생님 한 분의 체벌 경험도 교사의 그런 통제 능력과 맞물려 있다. 자기가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공고밖에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단다. 그런데 중3때 담임 선생님이 옥상으로 불러서 ‘너 머리는 있는데 공부 안 하냐’며, 평생 잊을 수 없이 아픈 매질을 했단다. 그분은 그때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자기는 어떻게 돼 있겠냐며 고마움을 표했다. 학생의 인생을 바꿨다는 이런 인상적인 체벌의 일화는 정말 많다.

또 다른 동료 교사는 고3 담임을 하면서 내게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 애들을 의자에 묶어 놓으면 좋겠다고. 나는 농담인 줄 알고, “애들 화장실은 어떻게 가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았는데, 그 분 말은 화장실 두 번 갈 걸 끈 풀기 싫어서 한 번 가고 그만큼 공부를 더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공부의 신’이라고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서울대 합격생의 베스트 셀러에 나온 처절한 공부법이었다.

우리 아이를 때려서라도 공부시켜 달라는 노골적인 요구가 통하는 사회. 죽지 않을 만큼의 가혹한 통제를 가해서라도 더 많은 공부를 시켜달라는 부모, 심지어 그런 선생님들을 원하는 학생들. 이런 분위기가 극단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 ‘흉기 체벌’이 아닐까?

그래서 저 기사를 읽으며, 나는 과연 좋은 선생과 나쁜 선생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8시간 학습 노동 후에 바둑을 즐기는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강제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인지 궁금했다.

우리 아이들이 하교 후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사색하며, 자연 속을 산책하는 삶, 운동과 요리와 음악을 즐기며 친지나 가족과 함께 하는 삶,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보기도 하는 삶을 살면 정말 이 사회와 학교, 교육은 무너지는 걸까? 오히려 무너진 우리 교육의 잿더미 속에서 그런 삶을 재건하는 것이 미래의 과제가 아닐까?


20141215 글 : 눈보라(전직 고등학교교사)


행신톡 'in교사, 교사의 속마음 디비기' 칼럼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풀고 싶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공교육 이야길 해봅니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서있는 '교사'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두 세 줄의 짧은 메모부터 사진 한 장, 풀리지 않는 어려운 고민들까지 있는 그대로 들려주세요. 글은 완전 익명을 전제로 올립니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깨굴에게 연락주세요. OlO-5l85-4l55 더 자세한 칼럼 소개는 http://hstalk.tistory.com/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