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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교사] 신해철의 죽음, 그리고 입시 경쟁 교육

[in교사, 교사의 속마음 디비기] 신해철의 죽음, 그리고 입시 경쟁 교육

 

신해철을 수술했던 스카이 병원장에 대한 보도가 연일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사건 앞에서 나는 뉴질랜드에서 의대 갈 준비를 하는 조카 이야기를 떠올렸다. 뉴질랜드에서는 의대생과 의사의 자격 요건으로 인성을 가장 크게 본다고 했다.

예를 들면 “시급을 다투는 노인과 어린아이 응급환자가 동시에 도착했다. 누구를 먼저 치료할 것인가?”같은 의학적 판단력을 묻는 질문부터, 때에 따라서는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적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통해 의대생을 선발한다.

지난 6월, 인문계 고등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큰 소란이 있었다. 서울대 지역균형 선발을 위한 학교장 추천 학생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역균형 선발(지균) 대상으로 선정되면 합격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상위권학생들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우리 학교에서는 성적 계산 방법에 따라 3명의 학생이 지균 후보자였다. 그때 지균 대상은 아니지만, 서울대 수시를 준비하는 또다른 학생인 ㄱ이, 그 셋 중 한명인 ㄴ의 종합생활기록부(생기부)를 문제 삼아 선생님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한 스펙을 가진 학생이 서울대 수시 원서를 넣으면, 자기 스펙의 독자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이었나 보다.

다른 친구의 생기부를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학생과 자기가 속했던 자율 동아리 활동 가운데, 그 학생의 기록이 거짓이라는 얘기였다. 그러자 그 세 명의 후보자 중 ㄷ도 같이 ㄴ의 생기부를 문제삼는 데 가담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담임, 학년부장, 자율동아리 지도 교사, 1학년 때 담임 자리를 찾아와 울고 따지고 법석이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돈봉투를 받고 ㄴ의 생기부를 잘 써줬다는 소문까지 일파만파 퍼져갔다. 나중에 학부모를 소환하여 교감선생님이 주도하는 회의를 열기까지 했다.

결국 ㄱ 과 ㄴ 의 생기부의 내용 모두 실제보다 턱없이 부풀려진 것이었으나, 그것은 관행이었다. 학교마다 자기 학교 학생들의 입시 성적을 좋게 하기 위해 생기부를 잘 써주려고 야단법석이니 생기부 부풀리기는 학교 현실에서 오히려 일상에 가깝다. 그래서 담임이 두 학생 것 모두를 지우자고 하니, ㄴ은 증빙자료를 수없이 가져왔고, ㄱ은 그냥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ㄱ이든 ㄴ이든 생기부는 가관이었다.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부모가 해준 것, 부모의 인맥으로 별다른 활동이 없는 것을 부풀려서 가져온 것... 학교에서 성적이 가장 뛰어나다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기적이기 짝이 없었고, 갖은 편법을 통해서라도 대학에 가겠다는 집념은 대단했다.

친구에게 공책을 빌려주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나 내용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거나, 수능과 관계없는 수업시간에는 귀마개를 하고 다른 공부를 하거나, 엎드려 자는 우수학생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이렇게 비정하게 공부해야 최상위권 대학인 의대를 간다.

인성교육이라는 말은 교육학 책에서 잠들고 있고, 학교에선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것이 점수이며 스펙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교사들이 몸으로 체현하며 가르치고 있다. 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신해철을 수술한 스카이병원장이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어도 다른 일은 몰라도 의사, 법조인, 교사는 이런 사람들이 돼서는 안되지 않나? 그러나 현실은 그런 소시오패스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택하기 좋은 구조가 우리나라의 학교나 입시선발 체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차가운 가슴으로 기계적 학습에 적응하며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의사가 되고, 법조인이 되고, 교사가 되는 사회. 나는 스카이병원장 강세훈이란 사람의 화려한 스펙을 보면서 천공은 신해철의 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에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20141203 글 : 눈보라(전직 고등학교 교사)


행 신톡 'in교사, 교사의 속마음 디비기' 칼럼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풀고 싶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공교육 이야길 해봅니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서있는 '교사'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두 세 줄의 짧은 메모부터 사진 한 장, 풀리지 않는 어려운 고민들까지 있는 그대로 들려주세요. 글은 완전 익명을 전제로 올립니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깨굴에게 연락주세요. OlO-5l85-4l55 더 자세한 칼럼 소개는 http://hstalk.tistory.com/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