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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교사] ‘행복한 가정’이란 환상에 상처받는 아이들

[in교사] ‘행복한 가정’이란 환상에 상처받는 아이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의 증가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OECD 국가 평균치보다 높을뿐더러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새 46.9% 가 증가해서 증가 폭으로만 보면 칠레 다음으로 두 번째다. 국가도 이런 위험을 감지해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울과 자살충동에 대한 심리검사를 하도록 한다. 이 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과 자살 위험군 학생들은 담임이 따로 불러서 면담한 뒤 상담선생님을 통해 학부모와 연결하여 위센터 등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안내한다. 이 제도는 내가 교직에 있는 동안 국가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거의 유일한 제도이다.

작년 우리 반은 학생 수가 적었다. 공부하겠다는 학생들과 아닌 학생들을 분류해서 편성하겠다는 교장선생님의 의지로 그렇게 되었다. 심리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받아들고 나는 좀 많이 놀랐다. 29명 중 10명이 관심군 학생이었고, 그 중에 여섯 명이 자살충동을 가진 것으로 나왔다.

학생들을 불러 개별 면담했다. 자살을 실제로 시도해 본 학생이 넷. 그 중 한 명은 몇 달 전 실제 한강에 투신했다가 구조됐던 사실을 내게 어렵게 털어놓았다.

학생들은 이런 면담에서 쉽사리 자살 시도 경험이나 내밀한 고통을 담임에게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때 면담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 나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는지를 먼저 물었다.

그 중 한 아이는 학기 초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학생이었다.

결석 지각이 잦고, 연락도 잘 안됐다. 첫 면담에서 학교 다니기 싫고 전학 가겠다고 했다. 짙은 화장에 차갑고 화난 듯한 눈빛, 영락없는 문제아였다. 어머니와 통화를 통해서 복잡한 가정사를 들었다. 하루는 얘기 좀 하자는데 할 얘기 없다며 교실로 가는 그 아이 뒤를 따라가며, “너 이런 식으로 하면, 교사 지시 불이행으로 학생부 가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갑자기 휙 돌아서며, “학생부 가요. 어차피 자퇴하고 싶으니까. 난 안 무서워요.”

학생은 화내고 꾸짖으며 앞서가고, 교사는 어정쩡하게 따라가는 상황... 좀 창피하여 “너 먼저 가 있어” 하고는 계단으로 돌아서 올라오는데, 수업 안 들어가고 계단에서 벌청소 하던 남학생들이 내 꼴을 보고 킥킥 웃었다.

이 학생은 변하지 않았다. 한 해가 가도록 일주일에 하루는 결석, 2~3일은 지각. 하지만 내가 변했다. 나약한 부모의 이혼과 방황이 아이에게 준 상처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나는 자주 아이를 칭찬했고, 아이도 나에게 자주 웃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유대관계를 가진 건 아니었다. 아이는 친구들을 사귀었고, 화장도 옅어졌고, 그리고 자퇴도 하지 않고 2학년으로 진급했다. 관심군 면담에서 이 친구도 세제를 먹고 죽으려 한 일, 손목을 그은 일 등을 고백했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강한 편이었다. 사실 많이 걱정되는 건 좀더 내향적이거나 자존감이 약한 아이들이다.

하루 종일 일터에 가서 자녀를 돌볼 틈이 없는 가난한 부모가 저녁 때 귀가해서 아이를 매질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정말 적다. 다행히 고등학생 쯤 되면 부모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이럴 때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잘못하고 있지만, 왜 그러는지 부모 입장에서 얘기해 주려고 애쓴다. 왜 그러는지를 부모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면, 당장 아이가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스트레스는 줄어들 수 있다.

학급에는 생각보다 이혼 부모의 자녀들도 많고, 빈곤으로 고통 받는 가정도 많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 자체보다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 가정’ 이데올로기 때문에 더 고통 받는다. ‘부모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식탁’은 중산층 양부모 가정의 평범한 모습이지만, 실제 가정의 모습을 보면, 이것을 평범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세계 10위의 높은 이혼율, 중산층의 붕괴와 빈곤층의 증가, 불안정한 고용과 장시간 노동 등 우리 나라 부모들이 처한 상황이 팍팍한데 아이들의 삶이 행복할 리 없다.

그러나 실제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도, 그 상황이 평범한 것이 아니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더 창피하고 괴로워하고 우울해 한다. 나는 그런 ‘부모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식탁’이 오히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것일 수도 있음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려 한다. 아이의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생각은 바뀔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사는 삶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는 학교마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안이하게 관습적 사고와 행태를 반복하며 상당수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우리 아이가 초등1학년 시절, 교실을 방문했을 때, 나는 교실 뒤 게시판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가족사진이 뒷 벽면을 빼곡이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꽤 많은 아이들에게 이 게시판은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지 않을까?


20141211 글 : 눈보라(전직 고등학교 교사)



행신톡 'in교사, 교사의 속마음 디비기' 칼럼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풀고 싶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공교육 이야길 해봅니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서있는 '교사'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두 세 줄의 짧은 메모부터 사진 한 장, 풀리지 않는 어려운 고민들까지 있는 그대로 들려주세요. 글은 완전 익명을 전제로 올립니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깨굴에게 연락주세요. OlO-5l85-4l55 더 자세한 칼럼 소개는 http://hstalk.tistory.com/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