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교사] 공교육과 사교육이 경쟁한다?
교직 생활을 하다보면, 학생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놀랄 때가 있다. 그러나 어이없어 보이는 행동에도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학생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좀 들어주기만 해도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한 명의 교사가 만나는 학생들은 너무나 많고, 한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행정 잡무는 학생들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10년 전 쯤의 일이다. 한 학생이 자꾸만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기에, 옆으로 가서 어깨를 두드려 깨웠다. 꿈쩍도 안 하던 그 아이는 흔들어 깨우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선생님도 학원에 가서 새벽 4시까지 공부해 보세요. 우 씨~” 당시는 10시 이후 학원 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나는 무척 당황했지만, 그냥 재웠다.
‘그래. 새벽 4시까지 학원이라니 나라면 아마 학교도 못 나왔을 거야.’
2013년 교육 예산 중 유아 및 초중고 교육 관련 예산은 41조에 이른다. 그런데 2013년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18조 6천억 원에 달한다. 사교육비가 공교육 예산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 사교육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사교육 없는 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다. 학생 수요에 맞는 질 좋은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사교육 수요 대부분을 학교교육으로 충족시키는 모델이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의 덕성여중을 보며 이 제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덕성여중은 교장이 직접 학생 학부모를 설득해 학원을 대신해서 교사들이 밤늦게까지 남아 전교생을 지도해 사교육 의존도를 현저히 낮추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며,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이 경쟁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내가 보기엔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 없는 학교’란, 장소만 공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졌을 뿐, 결국 방과후에 ‘사교육’을 직접 해주는 학교였다. 오히려 공교육 스스로 사교육 없이는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몸짓이 아닌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이렇게 비대한) 사교육이 왜 존재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의 직업 간 불평등, 불안정한 고용, 부실한 사회 안정망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고, 대학 서열화나 전형 방법, 그리고 초중고 교육의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대답한다면, 공교육이 제공하는 학습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가 만들어 놓은 정규 교육 과정을 학교에서 일과 중에 충분히 가르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왤까? 그 많은 학생들이 왜, 학교가 제공하는 정규 수업만으로 교육 과정을 소화하지 못해서 하교 후에 다시 밤늦도록 학원에 가야 했을까? 나는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해야 한다면, 학교에서 방과 후에 사교육을 대신해 줄 게 아니라, 사교육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 본 사교육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 수가 적다. 물론 스타 강사의 인기 강의는 백 명도 넘는 학생들로 가득차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학원은 대체로 한 그룹 당 7~15 명을 넘지 않는다. 당연히 교사가 학생의 개별적 성취를 점검할 수 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현재 30명 내외이며, 문이과를 나누고 남녀분반 등을 하게 되면 40명이 넘는 교실도 꽤 있다. 출산율 감소로 자연히 학생수는 줄어들 테니 기다리라는 분들, 예전의 콩나물 교실에 비하면 낫지 않느냐고 되묻는 어른들이 있지만,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도 유독 학교만 과거에 머물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경제규모는 13위인데 반해, 학급당 학생 수는 44개국 중 가장 많은 1위이고, 교사 1인당 학생 수 역시 OECD 평균보다 많다. (34개 회원국과 10개 비회원국을 포함해 조사한 '2014년 OECD 교육지표', 9월 9일 발표)
둘째, 학원 강사는 교재 연구와 학생의 학업 성취도 분석만 하면 된다. 그러나 교사는 다르다. 물론 학생 상담은 공교육 교사의 중요한 책무이지만, 그 외에도 교사들은 복잡한 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학교는 수업이나 학생 지도보다 행정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사가 교실에서 어떻게 수업하며, 인성 교육을 하는지 보다는 행정 업무를 얼마나 꼼꼼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지가 교직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표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훨씬 객관적으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정 능력이나 학교 밖 연수나 자격증 등의 활동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하는 제도인 ‘근무 평정’에 의해 교장 교감으로 승진한다. 당연히 학교의 최종 결정권자인 교장은 행정을 중요시하는 인물이 될 수밖에 없고, 학교는 수업이나 학생 지도보다는 행정 중심으로 굴러가게 된다.
셋째, 학원은 교육청 교육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한 달에 한 교사가 열람해야 할 공문은 거의 100건, 처리해야 할 것도 30건에 이른다. 이런 공문을 통해 지시 사항, 연락 사항이 끝없이 내려온다. 담당 장학사의 지휘 아래 많은 사업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예산이 배정된다. 그 예산을 단위 학교에서 지출하기 위해, 많은 교사들은 (대체로 학교에 방문한 적도 없는, 따라서 지금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장학사의 수족이 되어 맡겨진 사업의 성과를 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그 사업이 학생들을 위한 사업인지, 장학사와 서류를 위한 사업인지 헷갈리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예산을 단위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이는 데 썼으면, 턱없이 부족한 학교의 행정인력을 충원하는데 썼으면 하고 매일 생각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의 결과로 한국의 부모들은 공교육 예산의 절반에 이르는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물론 내 자식 좋은 대학 들여보내기 위해, 남보다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학원에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교육 교사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현재의 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모든 학생의 학업을 정해진 수준까지 성취할 수 있게 돕는 ‘진정한 수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20141224 글 : 눈보라(전직 고등학교교사)
행신톡 'in교사, 교사의 속마음 디비기' 칼럼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풀고 싶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공교육 이야길 해봅니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서있는 '교사'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두 세 줄의 짧은 메모부터 사진 한 장, 풀리지 않는 어려운 고민들까지 있는 그대로 들려주세요. 글은 완전 익명을 전제로 올립니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깨굴에게 연락주세요. OlO-5l85-4l55 더 자세한 칼럼 소개는 http://hstalk.tistory.com/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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