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교사] 교사는 생기부 대필자?

[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교사는 생기부(생활기록부) 대필자?


중학교에서 특목고 진학을 위해 생활기록부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면서 처음 내 반응은 "그래, 이 제도가 도입되면 성적 줄세우기보다 인성이 바른 아이가 인정받는 계기가 되겠군"이었다. 혼자 신났었다. 나는 워낙 단순해서 여러 생각을 하는 타입이 아닌데, 내 생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학교였다.


생활기록부 작성이 시작되면 학부모들은 수시로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를 통해 자녀의 기록을 확인한다. 그리고 담임에게 문자를 보내는 경우나 정중하게 전화하는 경우는 나중에 보니 감사할 일이었다. 처음 문자를 받고는 최대한 학생의 장점을 쓴다고 작성한 내용이 그렇게 문제가 될 만한 건지 화가 났지만, 나도 자식이 있는 부모로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정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다른 선생님이 작성한 생기부 내용을 학부모가 아예 사진으로 찍어 교장에게 보냈고, 결국 그 선생님이 교장에게 불려간 후 수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일 이후 문자나 전화로 수정요청을 나에게 직접 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감사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적어도 교장에게 사진찍어 보내진 않았으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원하는 대로' 바꿔주는 '친절교사'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 해야될까?

그러면서 내가 교사인가, 생기부 대필자인가 의문과 자괴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교사는 학급 학생이 지각하여 '왜 늦었어?' 물으니 반아이들이 듣는 상황에서 늦잠잤다고 이야기해 무단지각 처리했단다. 그러자 그 학생의 부모가 오후에 처방전을 가져와서는 '아파서 늦은 것'이라며 질병지각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단다. 이를 거절하자 '인정없는 교사'라 비난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옆에서 그 상황을 보던 다른 교사는, 자신은 질병지각으로 해줄것이라는 것이다. 왜냐고 묻자 다른 아이들이 늦잠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담임이 질병으로 했는지 무단으로 했는지 어떻게 알 것이며 그 학생이 그 한 번의 무단지각때문에 특목고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 학부모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수도 있을 거라고 답했단다.

난 요즘 모든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내가 교사로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건지, 원칙대로 해야되는지, 원칙이 아닌 길로 가야하는지...

학교가 교사인 나에게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교육하고 있는것 같다.


20150528 경기지역 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