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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창 밖의 한 남자, 그래도 희망

[in 교사] 창 밖의 한 남자, 그래도 희망
                                             
                                 
                                                                       
서울 강북의 한 여고에서 시작한 첫 교직 생활, 나는 원 없이 학생들과 다양한 수업을 해보았다. 거의 매 시간 학생들의 발표, 토론, 글쓰기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냈다. 모의국회나 재판도 좋은 수업 도구였다. 패러디 작품 쓰기나 모둠별 발표수업, 판소리 명창대회 등 필요하다면 어디로든 자료를 수집하러 다녔고, 무엇이든 배우러 갔다.
                                                  

 우리의 수업은 매시간 열광이었다. 매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에서 하는 발표와 토론에 집중하기 위해 뒷자리 학생들은 책상 위에까지 걸터앉아 하나가 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아름다운 교정, 순수한 학생들의 열정과 애정에 흠뻑 빠져 지낸 그 시간은 가히 내게 첫사랑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두 번째 해에는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여름 방학 보충수업에서는 교과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모둠별 연구과제를 발표하는 수업을 했다. 모둠 이름은 순우리말로 지을 것을 권장했다. 그 중에는 순우리말로 ‘동무’라는 이름을 정한 모둠이 있었다. ‘동무’ 모둠은 ‘한국 교육의 현실’을 연구과제로 정했다.
                                                                    

이 모둠은 매우 적극적이어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열심히 준비를 했다. 발표 당일 이들이 준비해온 자료에, 한국 교육의 현실은 ‘반민주, 반민중, 반민족’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어디서 이런 내용을 정리했는지 모르지만, 부정적인 단순화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수업 중에 어느 순간부터 창밖에 한 사람이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기둥 뒤에 숨어서 수업을 꽤 오래 지켜봤다. 당시 교감이었다. 발표가 끝난 뒤 나는 이 모둠이 자료를  적극적으로 풍부하게 찾아본 것을 칭찬했다. 그러나 자료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부정적 대목만 따서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수업을 지켜 본 교감이 나를 부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감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냥 넘어 가는가 했는데, 다음날 ‘동무’ 모둠의 대표 학생이 교감에게 불려갔다. 교감은 매일 그 학생을 불러서 ‘너는 빨갱이다. 네가 빨갱이가 아니라면, 너의 담임의 사주를 받고 그런 발표를 한 것이다. 담임의 사주를 받았다고 자백하면 너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협박했다. 학생은 자신들이 주변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린 이화여대 교수의 책을 참조했다며 책 제목과 저자도 얘기했으나 교감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모둠 이름에 대해서도 ‘동무’란 북한말인데, 그런 걸 사용한 것도 문제가 된다고 했다. 당시 우리 반 급훈이 ‘우리는 하나’였다. 이는 우리 반 ‘반가’의 노래 제목이기도 했다. 노래 가사는 ‘기쁨을 나누면 두 배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되고....사랑으로 나누는 우리는 하나...’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교감은 ‘우리는 하나’가 당시 임수경 방북의 슬로건이었던 ‘조국은 하나’를 의미하고, 따라서 ‘적화통일’을 원하는 너희 담임이 빨갱이란 사실을 고백하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이렇게 이 학생이 불려 다닌다는 사실을 나도 나중에 알게 됐다. 당연히 수업 내용에 대해 해명하고 학생을 괴롭히지 말 것을 부탁해야 했으나, 경력도 짧고 겁 많았던 젊은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학교 밖 연구 모임에서 만난 존경하는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구했다. 선배는 학생의 어머니가 교감에게 가서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강하게 얘기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순진한 학부모에게 교감은 오히려 당신 딸이 빨갱이니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나중에 교감에게 미약하게나마 항의하긴 했으나, 학생을 당당하게 지켜주지 못해서 고통 받게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일은 오랜 세월 동안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20여년 전의 그 학생으로부터 며칠 전 메시지를 받았다.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며, ‘전인교육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면 샘이 기억될 거에요.’라는 말로 시작됐다. 아름다운 기억을 줘서 고맙다고 제자로서 행복하다는 문자였다. 비로소 나는 오랫동안 하지 못한 사과를 했다. 지켜주지 못하고 나 때문에 힘든 일 겪은 게 늘 짐처럼 남아 있다고. 그리고 답이 왔다. ‘지켜주지 못하셨다니요.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나는 울 뻔했다.
 무너지고 있고 무너졌다는 우리 교육의 암울한 현실을 보며, 그때보다 암울했던 과거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무너진 게 아니라, 애초에 아직 다 세우지도 못했음을. 그래서 나는 다시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150601   글쓴이: 눈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