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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거리로 뛰쳐나온 ‘집순이들’, 4월이 남다른 사람들, 고양파주 0416 리멤버

[고양신문] 거리로 뛰쳐나온 ‘집순이들’
4월이 남다른 사람들, 고양파주 0416 리멤버

[1217호] 2015년 03월 25일 (수) 15:56:12 김진이 기자 kjini@mygoyang.com

밥먹다 보게된 세월호 뉴스
엄마들, 세상 지역 향해 성큼
4월 5일 1주기 행사 준비하며

   
1주기 행사를 준비중인 고양파주 0416 리멤버 회원들.

2014년 이후 4월이 특별해진 사람들이 있다. 이전까지는 평범한 주부, 직장맘들이었다. 평소에 TV뉴스도 많이 보고, 기존 언론이 맘에 안 들면 대안언론도 찾아 조합원 가입도 하고. 뭐 딱 그 정도.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변했다. 이제는 거의 매일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피켓을 든다. 남편, 아이들의 의아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내, 엄마의 변화를 인정하고 지지한다. ‘고양파주 0416 리멤버’ 회원들이 1주기 행사를 준비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작년 4월 16일 뉴스를 보면서 혼자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래도 ‘저만한 배가 넘어가는데 구조되겠지’ 하고 밥을 맛있게 다 먹었어요. 그런데 오후에 다 죽었다는 거에요. 밥이 도로 넘어올 것 같았어요. 나중에 동영상이 나오는데 차마 볼 수가 없었죠.”

밥먹다고 보게 된 세월호 뉴스
서정마을에서 대학생 딸을 키우는 주부 이유나(44세)씨. 처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하며 또 눈시울이 불거진다. 이전까지는 사회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단다. 정당, 단체도 가입한 곳이 없다. 세월호 사건 당시 고3이었던 딸. 교복입고 오는 아이를 붙들고 울기를 여러번. 황망한 마음을 붙들기가 어려웠는데 경제전문가인 선대인씨가 만든 인터넷 ‘다음’ 카페  ‘세대행동’을 알게 됐다.

“무조건 거리로 나갔어요. 거기서 지금 같이 활동하는 정지영, 박미선씨하고 나은경 언니를 만났어요. 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죠.”

‘집 순이’였던 그녀가 처음 한달 동안은 거의 매일 거리 서명을 나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데 토요일, 수요일 서명을 다녔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왜,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다. 유나씨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답했고, 가족들도 이해를 해주었다.
“지금도 배의 파란 부분이 각인돼 있다.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어요. 나는 국가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지만.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조차 죄스러워 하면서 지내다보니 1년이 되었네요.”

   
거리로 나온 '집순이들' 이제는 일상이 됐다.
생활정치 나눔공동체가 되다
모임에서 홍보를 맡고 있는 유나씨. 작년에 화정역 광장에 달았던 리본을 모아서 안산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유가족들은 ‘고양시 사람들이 극성맞은 것같다’며 농담을 했단다.  
모임은 1년여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나눔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싸움도 일상을 살아가며 ‘오래’ 해야하므로.

23일 모인 멤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나은경(51세) 대표. 대안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1년 휴식’을 선언했다가 더욱 바쁜 사람이 됐다.

“집 에서 엉엉 울다가 밖에 나가면 교복입은 애들보니까 더 미치겠더라구요. 처음에 너무 답답해서 혼자 스케치북에 ‘구조 빨리 하라’고 써서 광화문에 나갔는데 페이스북 친구인 황규관 시인을 만났어요. 그날 처음 만나 인사하고 홍대까지 갔어요.”
나은경씨는 지하철 역마다 서명을 받는 세대행동 회원들과 함께 행신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동네의 고양우리학교, 재미있는느티나무도서관 등 동네 단체, 주민들과 함께 팀을 나누어 서명을 받았다.
“은경 언니 없었으면 우리 조직은 와해돼.”

보수적인 남편도 이젠 끄덕끄덕
옆 자리 박미숙(44세)씨가 거든다. 박씨는 고3 아들, 중1 딸을 둔 주부. 1996년 결혼과 함께 화정으로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 엄마들과 안산을 다녀온 이후 너무 힘이 들었다. 고민만 하다가 5월 10일 월요일 7시 난생 처음으로 광장에 서게 됐다.

   
고양시에서 열린 북콘서트.
“제가 화정에 오래 살았지만 그렇게 광장에 서서 뭘 하고 그래보질 않았어요. 첫날 얼마나 떨리고 두려운지. 서명대 앞에서 벌벌 떨며 서명을 받았다니까요.”
처 음엔 일주일만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단다. 그렇게 오늘까지 함께 하며 언니 동생을 만들게 됐다. 남편 퇴근 늦을 때. 아이 학원 보내놓고 리본 만들고, 서명하러 나왔다가 시간되면 바쁘게 돌아간다. 내유동에서 16대째 살았다는 남편. 처음엔 ‘뭐하냐’는 반응이었지만 “허락해준 것만으로도 큰 응원”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뭐가 바뀔까.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지금은 손도 뗄 수 없고 집에 있으면 더 힘들어요. 그동안 나혼자 안일하게 살아서 그런 일이 생긴 것같아요. 일주일에 한번 리본을 만들더라도 끝까지 가야죠.”

활달한 성격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눈물도 많은 김경옥(47세)씨. 유족들 이야기 꺼내다 벌써 운다. 고2, 중1 아이들과 거의 매주 광화문에 나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우 리 아이가 세월호 사고 며칠 전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왔어요. 제가 이렇게 계속 하는 이유는 유가족들을 위한 게 아니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거에요. 유가족들 만났을 때 동혁이 엄마가 저를 안아주며 고맙다고 하는 거에요. 눈을 못 맞추겠더라구요.”
경옥씨가 또 운다. 이 사람들 참 눈물이 많다.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뜻만 갖고 모이다보니 갈등도 있고, 오해도 있었다. 그래도 ‘세월호’라는 큰 배를 보고 가자며 하면 고개를 넘었다.

말통하는 사람들 만나 속이 뚫려요
대안언론 국민TV 조합원인 정지영(42세)씨는 토당동에 산다. 키가 큰 중3 아들을 두었다.
“보 통 모임들이 다 지시형으로 조직관리 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안되잖아요. 우리 모임은 워낙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니까 모두가 주인이고,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같아요. 이곳처럼 성숙된 의식 가진 분들 못 만나봤어요.” 정치, 사회뉴스를 보며 절망할 때도 많지만 서로를 보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걸 느낀다.
자칭 ‘날라리’라는 박서정(49세)씨는 외국 유명회사 마케팅 업무를 맡았던 실력자. 새롭게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다보니 바빠서 제대로 모임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저는 처음 여기 계신 분들처럼 와 닿지가 않았어요. 이전까지는 정치, 사회적으로 관심없고, 내 가족, 내 가정만 알던 사람이에요.”

말과 달리 서정씨는 아이가 다니는 흥도초등학교 학부모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를 같이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이 바뀌어야한다’는 소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세 월호 ‘밴드’ 활동을 하는 김명기씨 덕분에 참여하게 됐죠. 저는 이 모임 덕분에 세월호를 더욱 깊게 알게 되고, 더 분노하게 됐죠. 그냥 머릿수라도 채워주자 하면서 와요. 사람이 없어지면 그걸로 끝이잖아요. 마지막 남아있는 한명이 되고 싶어요.”
그러고보면 이 사람들 참 용감하고 대단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1주기 행사에 사용할 리본과 배지를 만드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마케팅 전문가로 서정씨는 고양시세월호1주기집행위원회 홍보팀을 맡고 있다.  

사랑받는 ‘남성스런 여성’들
다들 중고생 엄마로 세월호로 희생된 안산고 학생들에 깊이 감정이입이 된 회원들과 달리 유영란(44세)씨는 7살, 6살 엄마다. 대장동 토박이 남편과 결혼해 토당동에 살고 있다. 세월호 모임에는 작년 7월부터 결합했다.

“아이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요. 저는 범죄 중에서 아동 범죄, 유아범죄, 학교 폭력에 대해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사건은 특별하죠.”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낮에 리본을 같이 만드는 정도의 활동을 한다고. 그래도 모임에 와서 말 통하는 언니들과 이야기 나누는 자체가 ‘힐링’이 된다.

박 상훈(50세)씨는 이날 모인 이들 중 홍일점. 사업 때문에 평상시 함께 하지 못하지만 현수막을 달거나 힘이 필요할 때 달려온다. 모임에는 필요할 때 달려오는 ‘슈퍼맨’들이 여럿 된다. 슈퍼맨들의 특징은 스스로를 ‘남성스런 여성’이라고 지칭한다는 것.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이 4월 5일부터 11일까지 1주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고양시,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함께 해 대중음악회, 청소년 참여행사 등 제법 메뉴가 다양하다. 

“1주기 행사는 1월에 개최한 다이빙벨 상영회 때 ‘하자’고 뜻을 모았다. 준비모임이 거듭할 수록 더 많은 이들이 오고 있다. 이번 행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자는 취지다. 아직 우리가 남아있다고.” 
세 월호 때문에 모였지만 어느덧 언니 동생이 되고, 크고 작은 행사를 같이 준비해왔다. 그러다보니 지역도 보이고, 사회, 이슈에도 눈이 간다. ‘건강하게 좋은 세상 만드는 일’, ‘희망을 만드는 일’로 자신들의 역할을 슬슬 옮겨가려 한다.

4월 5일 파주 모임과 함께하는 도보행진 ‘함께 걷는 노란 길’ 행사부터 세월호 유가족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행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