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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톡 늬우스/기인 늬우스

동네길 디비기 - 유모차 끄는 아빠와 아이 딸린 엄마, 휠체어 탄 아줌마... 턱이 너무 높아요!

7월 3일, 유모차 끄는 두 아빠와 아이 딸린 엄마, 휠체어 탄 아줌마가 화정과 행신 지역의 동네길을 디비고 댕겼다. 우리 동네의 길이 교통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잘 되어 있는 길인지 아닌지 직접 검증해보기 위해서다. 사실, 다리 길고 대충 사지 멀쩡하고 애도 다 큰 나는 이런 데 민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교통약자 당사자들은 하나하나 다 몸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함께 해보고 싶었다.


먼저 3살 재윤이와 재윤이 엄마 구슬과 함께 제보를 받은 강매동을 가보았다.



강매동으로 내려오는 강매고가차도 근방이다. 이 동네 길이 거의 다 인도가 없지만 이 곳은 특히 차들이 고가차도에서 속도가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내려오는 곳이어서 더욱 위험해 보였다. 아이와 함께 걷던 구슬은 아이가 무섭다고 해서 안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동영상을 찍는 나도 차가 옆으로 지나가니 섬뜩했다. 그래서 찍다 말았다...








화정근린공원에서 휠체어를 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형숙 센터장과 진수, 진수 아빠 이효성, 성율, 성율 아빠 홍원표와 합류했다. 화정부터 행신까지 길을 걷고 유모차를 밀고 휠체어를 끌고 다니기를 출발했다. 




화정 근린공원 옆 보도블럭을 가는데 인도에 있는 맨홀 뚜껑이 예사롭지 않다. 평소 유모차의 승차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 밀고 댕기는 진수아빠도 한 번 걸리니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특히 바퀴가 작은 싸구려 유모차는 더 힘들다. 맨홀 뚜껑 주변 보도블럭이 밑으로 꺼지면서 턱이 생긴거다. 보도블럭 보수 예산에 우호적인 성율 아빠가 이때다 싶어 바로 멘트를 날린다. '보도블럭 예산 함부러 뭐라 하면 안된다니깐~ 이런건 갈아야 돼~' 누가 갈지 말랬냐. 공사 할라믄 막판에 남은 찌꺼기 예산으로 몰아서 멀쩡한 보도블럭 뒤집어 엎지 말고 이런 문제있는 데 잘 파악해서 평소에 좀 하란 말이다~~~



화정동 성당 앞 삼거리. 인도와 횡단보도가 이어지는 부분의 턱은 항상 문제다. 전동 휠체어도 삐걱거리니 수동 휠체어는 더 힘들 것이다. 게다가 척추가 불편한 장애인은 이런 작은 턱을 넘을 때도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정도 턱은 정말 귀여운 수준의 낮은 턱이었다...



백양중학교 앞 교차로의 대각선 횡단보도. 구슬이 특히 불편하다고 말한 건데, 대각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아이와 함께 건너면 신호 길이가 짧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들다. 애가 있으면 우물쭈물 출발이 늦어버릴 수도 있고, 횡단보도 중간에서 지체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신호 길이는, 애도 없고 유모차도 안 끄는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 서울은 좀 더 길단다. 하지만 고양시는 얄짤없다.



백양중 앞 교차로의 인도가 기울어져 있다. 이런 곳은 여기 뿐 아니라 완전 많을 거다. 근데 이렇게 많이 기울어져 있는 인도에서 휠체어 타기가 위험하단다. 특히 뇌성마비 장애인이나 척추장애인들은 매우 두려움을 느끼고 실제로 휠체어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도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아까보다 더 높은 턱이 나타났다. 휠체어가 내려가긴 하나 다시 올라올 수가 없다. 이럴 땐 그냥 차도로 가야 한다. 지도초등학교 정문 앞 차도와 인도의 연결 부분도 경사가 너무 급하다. 진퇴양난이다...



다음은 백양공원. 리노베이션 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많은 공원이다. 근데 공원에 접해있는 옥빛 15단지로 연결되는 경사로는 가관이다. 돌계단 옆에 경사로를 설치해놨으나 그 경사도가 너무 심해 휠체어가 혼자서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 유모차도 힘 좀 써야 오르내릴 수 있어 보인다. 이거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님까?!



백양공원의 문제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백양공원은 다른 공원에 비해 인공 단차가 많다. 물론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도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어디가 경사로고 어디가 계단인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멀리서 봐선 알기 힘들고 직접 시작지점까지 가봐야 이게 계단인지 경사로인지 알 수 있다. 가봤는데 계단이면... 다시 돌아와서 경사로를 찾아 헤매야 한다. 사실 이런 건 교통약자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거다. 백양공원을 디자인 한 사람은 교통약자가 아님에 틀림없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공부라도 했어야 하는데 공부도 안 했나보다. 그 덕에 유모차와 휠체어는 공원을 빙빙 돌면서 미로찾기를 해야 한다.



백양공원 앞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근데 햇빛 18-2단지 쪽 인도의 턱이 무려 5cm! 휠체어가 못 올라온다. 진수 아빠와 성율 아빠가 휠체어를 들어올려서야 인도에 도착했다. 장애인들은 혼자일 경우 이 턱을 올라오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냥 차도로 간단다. 차가 알아서들 피해 가겠지~ 하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차도로 간다.





하이마트 앞 횡단보도. 여긴 진짜 일반 사람들도 한 번에 건너기 힘든 곳이다. 파란 신호등의 시간을 재보니 50초 가량 된다. 그래서 중간에 인도를 두었을 것이다. 근데 이 횡단보도를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닌 두 번에 건너야 하는 곳으로 규정했다면 중간 인도를 기준으로 양쪽 신호를 따로 두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 신호는 분명히 한 번에 건너라고 말한다. 우리 팀 중 씩씩한 유모차 아빠 둘은 겨우겨우 제 시간에 도착했지만 휠체어 이형숙 센터장과 재윤, 구슬은 결국 중간에 걸렸다. 이형숙 센터장은 빨리 오기 위해 중간 인도의 턱을 피해 차도로 우회했지만 한 번에 건너기는 실패! 신호 길이를 늘이던가 둘로 쪼개던가 해야 한다.


햇빛 23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행신3동 상가 블럭에서 가라뫼를 가려면 23단지를 가로지르는 게 빠른 길이라 이 단지에는 외부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인도의 턱에 민감해져 있던 중 참 편안해 보이는 횡단보도를 발견. 횡단보도를 차도에 페인트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니라 인도 높이에 맞춰 횡단보도를 높인 곳이다. 보행자는 턱 없이 같은 높이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차는 속도를 줄여 턱을 넘는다. 평화롭다.



하지만 다른 인도는 교통약자 배려가 아쉽다. 햇빛 23단지 내부가 전체적으로 높이 차가 있어서 경사로가 많은데, 이 곳은 인도의 경사가 너무 급해서 휠체어 장애인이 지나다니기엔 너무 위험했다. 가속도가 붙어서 어디따 처박을 거 같다.



진수와 성율이는 동갑내기~ 아빠들의 승차감 더러운 유모차 운행에도 크게 징징대지 않고 빵을 잘 먹고 있다.


우리는 햇빛 23단지를 나와 가람중학교와 가람초등학교가 있는 길로 들어섰다. 가라뫼 안 길은 인도가 거의 없고 가에 주차가 되어 있어서 특히 아이들에게 위험한 동네다. 그나마 가람초와 가람중 앞에는 인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뿔사!!! 가람중 후문의 인도 턱은 턱이라기 보단 절벽이다. 경사를 만들려는 의지마저도 없는 너무나 솔직한 절벽이다. 유모차를 끈 아빠들은 유모차를 번쩍 들거나 그나마 승차감을 고려해서 뒤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형숙 센터장의 휠체어는 결국 도움을 받아 내려왔다. 혼자일 경우엔 내려오지 못하고 왔던 길을 돌아가서 차도를 이용한다고 한다. 헐... 이 동영상은 실시간을 올리자 가람중 학생들이 댓글을 달았다. 여긴 자전거도 못 지나간다고... 그리고 우리 동네 강주내 시의원도 댓글을 달았다. 예산이 통과되어 공사를 할 예정이란다. 꼭 해주시길 바란다.





가라뫼 안길 중 이 행신로 311번길은 마을버스가 통과하는 메인 도로다. 근데 가람초등/중학교에서 시작한 인도는 중간에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것도 매우 불친절하게... 전봇대가 떡하니 박혀있어서 지나가기도 불편한 곳이 있는가 하면 인도가 끝나는 부분에서는 쓰레기 더미가 우릴 반겼다.




이제부터는 인도가 따로 없는 길이다. 마을버스와 차들이 마구 지나가는 이 길에서 유모차나 휠체어 뿐 아니라 일반 보행자도 너무나 위태롭다. 이건 길이 아니다...



길을 건너 화은교회 앞으로 왔다. 최근에 지어진 큰 교회다. 근데 이 교회... 정문에 경사로가 없고 휠체어는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되어 있다. 교회 앞 인도의 경사로는 휠체어가 올라오기 힘들 정도로 기울기가 너무 급한 반면 주차장 입구는 매끈~하다. 굉장히 차별받는 느낌이다. 이 세상 중생을 차별없이 사랑해야 할 '교회'라서 그런지 더 그렇게 느껴진다. ㅠㅠ



고양우리학교 앞으로 왔다. 지난 6월 24일, 이형숙 센터장과 구슬, 이효성 그리고 내가 사전 모임을 가졌었다. 오늘의 동네길 디비기를 어떻게 진행할 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고양우리학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약속시간 30분 전에 문득 엄청난 장애물이 생각났다. 고양우리학교는 마당 대문부터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단독주택과 상가 건물을 이용하는 대안학교라지만 장애인 시설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급히 약속 장소를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오늘 가보니 고양우리학교 앞 골목길도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니기엔 너무 급한 경사다. 여기가 사유지인지 공공도로인지 확인을 못했지만 사유지라 하더라도 이 길은 오로지 차를 위한 길이다.



마지막 코스는 도내로다. 이 길은 길 초입에서 성사천까지만 인도가 있고 그 다음은 또 슬그머니 없어져서 인도가 없다. 특히 원흥지구가 생기면서 이 길을 이용하는 차가 많아졌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시골길이라 산책로 필이 나던 곳인데 이제는 두려움의 길이 되었다.




진수 아빠는 이 동네가 차 중심의 도시여서 보행자, 특히 교통약자가 다니기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한다. 특히, 횡단보도 신호 시간 안에 건너기 위해 유모차를 밀면서 뛰는 게 당연하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는데, 급하게, 불편하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보행다운 보행을 할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다.



이날 동네길 디비기를 하다가 신기한 신호등 발견. 파란불이 꺼지고 빨간불로 바뀌더니 다시 파란불이 켜진다. 멈칫! 정신줄 놓은 신호등이다.



2시간에 걸친 동네길 디비기를 마친 후 저녁먹으러 고기집에 갔다. 이형숙 센터장이 고양시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장애인 콜택시는 시군별로 따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그 시군의 규칙에 맞게 요청을 해야 하는데, 고양시는 2시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단다. 그런데 6시가 넘어서 이미 예약이 끝났고 야간 운행하는 콜택시는 딱 1대 밖에 없으니 새벽 4시까지 기달리라는 내용이다. 헐... 결국 이형숙 센터장은 장애인 콜택시를 포기하고 휠체어로 성사천을 따라 강매역까지 가서 경의선을 타고 서울로 갔다. 서울은 장애인 콜택시를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2013년 10월에, '고양시,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 43대 확보'라는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2013년 11월부터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13대를 추가 운행함에 따라 법정대수 43대를 모두 확보'했으며 '이로써 그동안 차량 부족으로 배차가 지연되던 교통약자의 불편함이 해소되고 운전원 18명 채용으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게 됐다'며 자랑을 했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니 민간위탁이 이루어지면서, 이용자가 아닌 운영자 편한대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없다.


행신톡 동네길 디비기를 통해 본 길은 정말 일부분일 것이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길이 널려있을 것이다. 고양시가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의 도시가 되려면 이제는 좀 더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3cm 넘는 턱을 없애고 횡단보도 신호 길이를 늘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남는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럭 뒤집어 엎는 대신에 이런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


행신동 롯데마트 앞에서 귀여운 경사로를 발현했다. 원래는 인도에 3cm 정도의 턱이 있는 곳인데 거길 몇 줌 안되는 시멘트로 메꿔서 턱을 없앤 것이다. 누가 했는지, 얼마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 작은 시멘트 경사로를 지나며 우리는 따뜻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고양시민이 낸 예산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동네길 디비기 이동 경로





20150704 글/동영상/사진 : 깨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