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들의 절망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미래가 눈에 선명하다는 것”
“절망을 강요하는 사회는 잡초가 가득한 세상, 설득을 위한 공부를 해야”
어수선했던 2015년의 가을이 빗속에서 막차를 타던 지난 11월 7일 저녁. 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이하 노동당 고양파주당협)는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의 작은 카페&극장 ‘동굴(동네를 굴려라)’에서 ‘벼랑 끝 청년들, 헬조선에서 길을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좌담회를 열었다. 홍세화 노동당 고문 겸 장발장 은행장과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 겸 절망라디오 디제이(DJ), 그리고 길은정 알바노조 비정분회장이 패널로 나왔다. 좌담회 진행은 신지혜 노동당 고양파주당협 위원장이 했다.
노동당 고양파주당협은 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벼랑 끝이라고 보고 있다. 노동당 고양파주당협은 그러나, 청년들에게 벼랑 탈출구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다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이른바 ‘힐링 홍수’는 지금 아픈, 죽을 만큼 아픈 청년들에게 거저 모르핀 처방일 뿐이라는 것. 그것이 노동당 고양파주당협의 진단이다.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한국청년들의 가냘픈 맨발을 건조한 눈으로 먼저 바라봐야 한다는 게 노동당 고양파주당협의 생각이다.
이날 좌담회에는 20여 명의 시민들이 작은 동굴을 가득 매웠다. 좌담회는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무거운 주제였지만 분위기는 밝았다. 패널들은 ‘헬조선’ 청년들의 어두운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청중들에게 우울모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간혹 웃음을 유도하는 패널들의 말이 나오면 청중들은 박장대소로 화답했다.
신지혜(이하 신) : 한국사회는 지금 청년들의 문제들을 올바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좌담회는 지금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을 바로 보고, ‘헬조선’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좌담회에 앞서 오늘 오신 패널들은 자기소개부터 해 주시라.
홍세화(이하 홍) : 저는 가장자리 협동조합 이사장이고, 장발장 은행장이며, 그리고 또…, 몇 개 더 있는데 잊어 버렸네…. 아참, 노동당 당원이자 고문이기도 하다. 이건 중요한 건데….(웃음)
김성일(이하 김) : 한때 노동당원이었다. 최근 복당 신청을 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청년좌파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 9월 쯤 시작한 팟케스트 ‘절망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절망 라디오는 지금 2~3달 째 진행 중인데, 고정 청취자가 1,500명 정도 된다.
길은정(이하 길) : 알바노조 비정분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비정분회는 아닐 ‘비(非)’ 정해질 ‘정(定)’을 써서 ‘모든 정해진 것들을 거부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알바노조는 기존의 노동조합과는 달리 산업이나 부문별 분회를 조직하지 않는다. 5명 이상이 모이면 어떤 분회든 조직할 수 있다. 알바는 19살 때부터 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바를 하고 있거나 구하고 있거나 그만 둔지 얼마 안 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교회의 근로장학생으로 연명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아닌데….(웃음)
신 : 청년 현실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길은정 씨는 지난 4년간 알바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길 : 처음 알바를 시작한 건 용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가정불화로 가출 한 뒤부터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도 계속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중인데 다행히 빚은 아직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 사고 있는 이유다. 그래도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는 통신비 식비 주거비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신 : 어떤 알바들을 했나? 경험담을 좀 들려 달라.
길 : 가장 최근에 했던 건 프랜차이즈 주꾸미 집에서 서빙하는 일이었다. 굉장히 맛이 없는 집이어서 (손님이 많지 않아) 일은 편했다.(웃음) 그 전에는 밥버거집에서 일했고, 크로키 모델, 공연스태프 단기알바 등도 해 봤다. 경력이 쌓이다 보면 알바를 구할 때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 구인광고에서 ‘용모단정, 20~25세’ 같은 내용이 있으면, 그건 예쁘고 젊은 여자를 뽑겠다는 뜻이다. ‘성실’ ‘책임감’ 같은 문구는 많이 부려 먹겠다는 뜻이다.
신 : 부당한 대우나 부조리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나?
길 : 부당해고나 꺾기는 다반사고, 성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우리끼리 ‘꾸미노동’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알바에게 화장을 하게 하거나 예쁜 옷을 입기를 강요하는 경우 등이다. 식당이나 카페 같은 경우가 특히 심하다. 어떤 업소는 ‘네 얼굴은 서비스 할 자세가 안 돼 있다’ ‘화장부터 하고 와라’는 등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한다.
성차별이나 성폭력도 비일비재하다. 크로키 모델을 할 때였다. 이런 일은 주로 모델협회에서 알바를 뽑아 파견을 보낸다. 한 번은 현장관리자가 자꾸 내 몸을 만진 적이 있었다. 너무 참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일을 한 후 서둘러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현장관리자가 “왜 그렇게 급하게 가. 쉬다 가”라는 말을 하더라.
부당해고도 많다. 최근까지 일했던 그 주꾸미 집에서는 1주일 사이에 5명이 해고됐다. 이유는 ‘일 못함’ ‘사장한테 말대꾸’ 등이었다.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휴게시간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혹시 ‘꺾기’라고 들어 보셨나?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을 하기로 계약을 해놓고, 중간에 손님이 없으면 사장이 알바에게 요구한다. “너 손님 올 때까지 피시방 같은데 가 있어.” 그리고는 그 시간 동안을 알바비에서 제하는 거다.
홍 : 어쨌든 지금 길은정 분회장께서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얘긴데…. 장래의 설계에 대한 그림은 있나? 있다면 지금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길 :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제는 내 삶의 방향을 찾는 거다. 가출을 한 후 친구 집에 얹혀 살 때는 사실 앞이 깜깜했다. 사회적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지금도 여전하다. 현재는 여성의 자립적인 삶에 관심이 많다. 힘은 들겠지만 앞으로 그런 쪽의 운동을 하면서 살 생각이다.
“알바는 을 중에서도 최하층을”
신지혜 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 위원장
신 : 김성일 대표께서 진행하고 있는 절망라디오에도 이런 사례들이 많이 있지 않나? 청년 절망사례 중에서 들려 주실만 한 게 있을까?
김 : 청년들 각자의 절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게 있다. 그건 바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바로 절망이 되는 것이다. 당장 배고픈 문제보다는 자신의 미래가 눈에 확 보인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절망이다.
최근 가장 많이 접하는 사례는 대출 과련 건이다. 특히 청년 대출금이 계속 늘어나는 문제는 심각하다. 만약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그만 둘 수도, 계속 다닐 수도 없는 문제다. 밥을 굶으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장학금을 못 받아서 결국 대학을 그만두어야 했던 사례도 있다.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서 생계비 대출로 이어지고, 그게 알바로 연결되는 게 일반적이다. 금세 빚이 쌓인다. 그렇게 되면 월세나 가스비 전기세가 밀리고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결국 이런 청년들은 3금융으로 넘어간다. 요즘에는 3금융권의 대출 브로커가 캠퍼스 안에까지 들어와서 영업을 한다.
대학에 가지 않는 청년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부모나 가족이 그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만큼 기성세대들의 살림살이도 팍팍해 진 거다. 이런 청년들을 유혹하는 대출은 다양하다. 휴대폰 내구제 대출부터 고소론, 중고나라론 등이 최근에 유행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 청년은 휴대폰 내구제 대출로 900만원을 끌어다 썼다. 엄청난 이자율이었다. 연 100% 정도…. 그 청년은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다른 대출을 받아야 했고, 끝내는 노숙자로 전락했다. 실제로 지금 서울시에서 20~30대 노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노숙자의 26%나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에 가지 않는 청년들이 3금융권 대출에 너무 쉽게 노출이 된다는 거다.
신 : 나도 아직 20대이다. 가끔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결론은 ‘우리는 평생을 빚에 허덕이며 살 거라’는 거다. 이렇게 돼서는 미래라는 게 아예 없지 않나?
김 : 수 백에서 많게는 수 천 만원의 빚을 지고 사회에 나오는 청년들에게 ‘절망’이라는 건 곧 ‘길이 없다’는 뜻이다. 절망 라디오에서 소개한 내용인데, 얼마 전 인터넷 중고품 거래 사이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번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이 그 돈을 가지고 곳은 다름 아닌 강원랜드였다. 그 청년은 거기 다녀온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도박에 빠져 그렇게 됐다고 착각을 한다. 그 청년에게, 그의 삶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건 결국 도박이었던 거다.
지금 돈이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내일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내일이 불확실한 것만큼 불안한 게 있을까?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계속 일하는 것 정도는 평범한 미래다. 그들이 취업했을 때의 목표는 학자금 대출을 갚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게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있나? 빌리면 내일모레 죽고, 안 빌리면 내일 죽는다. 그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게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다.
신 : 현실의 한국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 혹은 좌절은 거기서 나오는 건가?
김 : 지금 한국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은 70% 정도다. 몇 년 전까지 80% 정도였지만 지금은 약간 낮아졌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 하고 있는 게 있다. 대학에 다니는 청년이라면 그 집은 경제사정이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심한 착각이다. 고등학생, 혹은 그 또래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건 다른 측면에서 따져봐야 한다. 한국의 가구 수, 그리고 대한민국의 빈곤율을 감안하면 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을 못 하는 고등학생들은 ‘나는 누구지?’ ‘내가 못나서 그런 건가?’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느껴는 거다.
그러나 한국의 청년들에게 지금 한국의 이런 상황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따라서 지금 청년들은 정상의 기준을 아래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홍 : 이 지점에서 나는 의문이 든다. 내가 길에서 보는 젊은이들은 굉장히 활달하다.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의 말이 잘 납득이 안 된다. 전망이 없다면, 왜 그런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걸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독자적인 모습이든 집단적인 모색이든…. 그런데 지금 청년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인다. 왜 안 보이는가? 그런 생각이다. 일제 강점기 때만해도 젊은이들에게는 기백이 있었다. 지금 한국청년들의 이런 모습을 순치로 봐야 할까?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김 :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전제가 있다. 나는 지금의 청년세대를 아이엠에프(IMF) 이후 세대로 규정하고 싶다. 청년들의 부모세대는 자식세대에 대한 착각이 있다. 아이엠에프 이후 세대는 아이엠에프 이전을 살아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들에게 지금 한국은 디폴트다. 한국 청년들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보호하는 기제가 발달해 있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 게 소비, 혹은 쇼핑이다. 맛집을 찾거나 길거리 쇼핑을 하는 건 결국 그들이 생각하는 사는 재미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 티브이(TV)에서 경쟁적으로 맛집이나 쇼핑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홍 : 그런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청년들, 특히 홍대 같은 거리에서 본 청년들의 분위기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던데….
김 : 거리, 혹은 공간의 차이다. 홍대와 노량진…. 그런데 절망 라디오에 들어오는 사연들을 모아보면 이 둘은 결국 똑 같다. 거리(공간)가 분화 돼 있는 것뿐이다. 홍대는 놀 때 가는 곳이고, 노량진은 공부할 때 있을 곳이다. 그러나 이 둘의 공간에서 고백하는 청년들의 경험은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이른바 ‘과소비’는 최소한의 존엄을 찾는 과정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집에서는 이미 부모와의 대화부터 괴리돼 있다.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아버지 세대’는 이전 세대에서 구축한 신화가 있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거기에 대한 일종의 박탈감과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 대한 반감이 있다. 그러나 그 분노는 확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을(그 분노를) 던질 대상이 없는 게 문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아버지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 둘 중에서 편을 들 지점이 없다는 거다. 할아버지의 편에 서는 청년들은 이른바 ‘일베’ 쪽으로 간다. 이도 저도 아니면 결국 정치에 대한 보이콧 뿐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찌 보면 격렬하게 살아간다. 힘센 나쁜 놈과 약한 나쁜 놈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인 거다. 거기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지금의 청년세대다.
한국 청년들의 정치 무관심, 혹은 탈정치화에 대한 걱정과 그 원인을 진단하고 있는 홍세화, 김성일 패널. 두 사람의 해법은 결국 다르지 않았다.
청년, 일베가 되거나 정치 무관심자가 된다
신 : 결국 인간의 존엄성 문제로 귀결되네. 좀 전에 소개하셨듯이 홍세화 선생님은 지금 장발장 은행장이시다. 생소한 은행이다. 장발장 은행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말씀 해 주시라.
홍 : 장발장 은행은 지난 2월 25일 문을 열었다. 범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받은 사람 중에서 그 벌금을 낼 돈이 없는 사람은 감옥에 가서 노역을 한다. 이걸 법정용어로 환형유치(換刑留置)라고 한다. 벌금만큼 감옥에서 노동(일)을 하는 거다. 장발장 은행은 벌금을 내지 못 해서 감옥에 가야 할 사람에게 벌금을 대출해주는 은행이다. 이자를 받지 않기에 은행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재원은 시민성금이다. 11월 초 현재 2,000명의 개인과 단체 등에서 들어온 5억 원 정도의 돈이 재원이다. 지금까지 274명에게 대출을 했다.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6개월 거치 후 1년 분납 조건이다. 작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서(낼 형편이 못 돼서) 감옥에 가는 사람이 4만 명 정도다. 1998년에 7만 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6만 명으로 다시 늘어날 걸로 예상한다. 그만큼 국민들의 삶이 팍팍해 졌다는 방증이다.
환형유치에 갇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모두 딱하다. 대부분 200~300만 원 정도의 벌금형이다. 게다가 거의 생계형 범죄다. 예를 들면 새벽에 우유배달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는 당연히 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돈이 없다. 결국 그는 무보험으로 자동차를 운전한 죄를 짓는 게 된다.
신 :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홍 : 무전유죄가 아니라 무전이면 필연적으로 죄를 부른다고까지 확장해서 봐야 한다. 결국 돈이 없는 사람은 범죄자이거나, 그 경계에 서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청년세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발장 은행은 국회에 3가지의 법률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벌금을 못 내도 집행유예가 가능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행제도에서 벌금형은 집행유예 대상이 아니다. 재벌총수들의 법정 공식이 있지 않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두 번째는 벌금의 분납이나 연납제를 해달라는 거다. 현재는 형이 확정된 후 30일 안에 완납을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사회봉사제도를 확장해 달라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벌과금은 당사자의 재산과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은 한국과 달리 ‘일수(日數) 벌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정 범죄에 대해 얼마 식으로 액수를 정하는 게 아니라 범죄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하는 거다. 이를 테면 ‘벌금 20일’ 하는 식이다. 여기에는 범죄자의 소득에 따라 하루 벌금액이 정해진다. 그러니 두 사람 이상이 같은 죄를 지어도 그 사람의 소득이 얼마냐에 따라 각자의 벌금 액수가 다르다.
홍세화 노동당 고문 겸 장발장 은행장
신 :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걱정, 특히 선배세대들과 비교하면서 좌파 쪽에서 이 부분을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홍 : 내가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아한 지점이 있다. 만약 프랑스가 지금의 한국사회와 같은 상황이라면…. 르몽드는 ‘붉은 구월’ 같은 사설을 쓴다. 혁명을 선동하는 거다. 한국에서도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이게 안 되는 건… 의문이다.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가 좀 전에 언급한 ‘지금의 상황이 정상’이라는 건 나에게 꽤 충격적인 말이다. 분명 엄중해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가? 만약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청년실업 문제(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25~30%)가 프랑스에서 불거진다면 분명히 사회가 뒤집어 진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가족유대로 버틸 수 있지만 프랑스는 그게 취약하다. 지금의 한국 역시 가족유대가 많이 무너져 있고, 청년실업률도 높다. 그런데 한국은 왜 이렇게 조용한가?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물론이고, 그 해결 역시 교육의 몫이 아닐까 싶다.
김 : 분노가 응집되지 않는다는 홍세화 선생의 말에는 공감한다. 지금 청년세대의 살아가는 방식이 단발적(소셜 네크워크 서비스 등)이라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청년들은 사회적 패배자인 아버지가 나한테 잘난 체 하는 것에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건 어쩌면 개인에 대한 강력한 분노다.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이 고양시내에 내건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내 아버지 임금을 깎아서 내 일자리를 만든다고?’라는 현수막이다. 정부의 노동개혁 방식 중 임금피크제를 반박하는 현수막이다. 그 자체로는 맞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정치적으로는 틀려먹은 현수막이다. 청년세대는 지금 아버지 세대의 눈높이가 낮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비정규직 알바세대가 지극히 일반화 돼 있다. 지금 한국청년들의 감성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청년과 같다고 보면 된다. 한국의 청년세대는 그들의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해 지금 그들을 옥죄고 있는 정상의 기준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홍 : 지금 우리 상황, 청년들의 상황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은 하지 않나?
길 : 내 현실이 분노로 이어지지 않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의 한국이다. ‘해봤자 뭐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가끔 내 친구들에게 집회에 나가자고 말을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넌 그런데 갈 시간이라도 있으니 좋겠다’는 반응이다. ‘난 그 시간에 알바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는 거다.
김 : 적의 힘이 너무 세다. 지금 한국 청년들에게 할아버지 세대(이승만-박정희)는 엄청난 세대였고, 아버지 세대 역시 비슷한 존재다. 소위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는 아버지 세대는 이건희라는 자본의 존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근거 없이 명령만 하는 소위 민주주의 세대들…. 지금 청년들의 눈에는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지금 한국의 청년들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세대라고 규정하고 싶다. 아이엠에프 이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세대다. 그리고 아직은 현실에 등장 하지 않은 세대다. 물론 지금 청년세대들이 앞으로 한국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앞으로 펼쳐질 좌우 싸움을 예비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신 : 어떤 통계로는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노동자, 즉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건 곧 청년들이 현실 정치에 신경을 쏟을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김 : 아이러니 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건 바람직한 거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그건 아주 불안(정)한 사회라는 뜻 아닐까? 그런데 그 통계는 작년에 바뀌었다. 작년부터 한국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선박사고가 됐다. 왜 그런지는 다 아실 거다.
한동안 나는 진보정치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한국의 진보정치, 혹은 진보정당은 뭔가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이른바 한국 진보정당들은 어쩌면 그 강박증 때문에 국민들과 멀어진 건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진보정당은 대안 없는 반대만 해야 한다. 최소한 지금의 한국에서는 그게 최선이다. 대안은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각자의 바람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어쩌면 대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정책’이나 ‘대안’ 같은 말들을 만든 게 아닌가? 지금은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길은정 알바노조 비정분회장
길 : 최저임금 1만원이나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청년을 묻는 곳에 청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청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청년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성세대가 제발 꼰대질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와 다르다. 꼰대질을 듣는 순간 대화가 차단된다. 미시적인 공간인 가정에서부터 소통과 연대 상호공감이 필요하다.
홍 : 한국에서는 공간, 그 자체가 위계적이다. 내가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내가 파리에 있을 때 택시운전을 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다. 귀국한 후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택시를 탔다. 어찌 보면 그 택시기사는 나와 동업자다. ‘나도 택시기사였다’고 말하면 분위가 좋아진다. 그러면서 서로의 애환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기사가 나에게 묻는다. “지금은 뭐하냐?” “한겨레 신문에 다닌다” 바로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나는 그에게 일부러 불어본다. “한겨레신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기대하는 대답은 ‘괜찮은 신문’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두 번째로 기대하는 대답은 ‘나는 한겨레를 안 읽어서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거다. 아마 많은 택시기사들의 경우 이 두 번째 대답이 정답일 거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은 놀랍게도 한겨레를 전혀 읽지 않으면서도 한겨레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친북신문이니 전라도 신문이니…. 별 소리가 다 나온다.
이 택시기사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너무 힘들다. 이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회의할 줄도 모르는 거다. 부부간에도 회의하는 관계(열린 자세)라면 서로 같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의 부부들조차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부부가 이럴 진데 하물며 우리가 누구의 생각을 모아갈 수 있을까? ‘설득’이라는 말은 있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자녀들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하지 않는 한국교육의 문제. 이게 바로 지금 한국사회의 근본적 문제 아닐까?
한국에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그걸 배운 게 아니다. 대부분 ‘선배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끼리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공간에 머물러 버린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생태적인 관점이 크지 않을 때 나온 말이긴 하지만 ‘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잡초를 뽑지는 않고 어떻게 없앨까만 궁리한다. 세상이 잡초 밭이 되면 ‘세상이 온통 잡초 밭이네’ 하면서 개탄만 한다. 잡초를 뽑는다는 의미는 어떻게든 남을 설득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거다. 그런데 나조차 거기서 멈춰버릴 때가 있다. 이 지점을 뛰어넘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강하게 하고 있다.
청중 1 : 우리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시작해야 하나?
김 : 지금 청년좌파는 절망 라디오라는 팟케스트를 하고 있지만, 문득 기시감이 든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까 이런 방송이 있었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방송이었더라.
한국청년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누군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거다. 어쭙잖은 답을 내기 전에 당장은 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신해철의 ‘매미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거기에 ‘엄마 왜 세상은 이런 거라고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라는 가사가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공부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람을 무서워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나의 적인지 아군인지를 먼저 판단하려한다. 밖이 무섭기 때문에 안으로만 파고든다. 가장 중요한 건 대화다.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린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야 한다.
청중 2 : 지금 한국 청년들의 탈정치, 혹은 정치 무관심은 그들이 충분히 절망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도 한다. 솥에 담긴 개구리와 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삶겨 죽기 직전까지 내가 죽어가는 지 모르는 것 아닐까. 이 상황을 회의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입하는 게 최근까지의 사회분의기다. 정말 힘들다는 공감이 생기고는 있지만 그나마 자조적 수준이다. 극복을 위한 길은 모색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으로 안 된다. 지금은 누가 이민을 간다고 할 때 ‘잘 했다’ ‘다시는 한국에 오지마라’가 인사가 됐다.
홍 : 나도 이른바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특히 어릴 때 ‘경청 받는다’ ‘존중 받는다’는 경험이 결여돼 있다. 거의 없다. 부모가 나를 귀여워는 하지만 경청하지는 않는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꼰대의 유형 아닐까? 한국은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질문에 잘 답하지도 않는다. 그럼 결국 나는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 한 아동학자가 아이의 말을 녹음한 적이 있다. 만 세 살까지. 그랬더니 아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엄마’였고, 그 다음으로 많이 한 말이 ‘왜?’였다. 이 결과는 분명한 걸 보여준다. ‘왜?’ 라는 아이의 질문에 항상 대답을 해 줬다는 뜻이다. 그만큼 아이가 하는 말에 귀담아 듣고 대답을 해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설득은 결국 진보좌파정치의 몫
신 :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도 어찌 보면 그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홍 : 우리가 흔히 지적하는 ‘조직 이기주의’는 운동의 건강성을 상실했을 때 나타난다. ‘조직하고 학습하고 선전하라’는 말은 일종의 명제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교육선전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 혹은 좌파 조직을 보면 선전은 있을지언정 교육이나 학습은 결여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내 사유(혹은 조직의 방향성)가 완성단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행태가 그러하다. 따라서 당연히 남(대중)을 설득 할 수 없다. 뭔가에 헛헛함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사람을 설득 할 수도, 내가 설득이 되지도 않는다. 이 말을 뒤집어 이야기 하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겨우 책 몇 권 읽은 후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학습이 안 되면 홍보도 안 된다. 결국 조직만 남고 조직이기주의에 빠진다. 이런 조직은 결국 정파싸움에 매몰되고, 운동의 건강성은 실종이 된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으면 오만이 되고, 그게 바로 꼰대 짓이다.
신 : 시간이 꽤 흘렀다. 노동당 고양파주당협은 오늘 ‘벼랑 끝 청년들, 헬조선에서 길을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세 분의 패널들도 이 제목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청년들의 현실을 우리가 같이 느끼고, 무엇부터 시작해 볼까를 함께 고민해 보는 자리를 마련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노동당 고양파주당협의 시민좌담회는 저녁 9시 쯤 끝이 났다. 이후 세 명의 패널들과 20여명의 청중들은 근처 맥줏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새 주(酒)담회로 이어갔다. 늦가을 비는 다음 날 새벽까지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20151109 글/사진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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