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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칼럼/in교사, 교사 속마음 디비기

[in 교사] 단기방학에 대한 단기 반응

[in 교사] 단기방학에 대한 단기 반응

 

 

 

 올해 처음 일부 학교에서 5월 단기 방학이 실시되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5월초 10일 내외의 단기 방학이었다.

 

 내가 처음 단기방학에 대한 논의를 접한 것은 학기말이나 수능 이후 수업 파행을 개선할  대안으로서였다. 학기말 시험이 끝난 뒤 방학을 앞둔 시점에서 정상적인 수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시간을 때우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가 아니라 영화관이라는 농담이 오간다. 그렇다고 이때 수업을 하면, 학생들의 항의 에 부딪힌다. 혹은 떠들고 자는 학생들 앞에서 고독한 원맨쇼가 되기 십상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언론에서 가끔씩 단기 방학 얘기가 흘러나왔었다. 긴 방학 대신 4계절 방학으로 나누어서 기말고사가 끝난 후 수업 파행을 줄이자는 얘기였다. (물론, 나는 4계절 방학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도 교육청은 계절 방학 시행 취지를 “고질적인 문제인 학기말이나 수능 이후 수업파행 등의 문제개선, 학습과 휴식의 균형, 학습과 체험의 유의미한 연계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5월 1일을 전후로 단기방학이 실시되자, 언론은 일제히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대책 없는 단기방학 맞벌이 부부 뿔났다’(KBS) ‘최장 10일 방학 맞벌이 부부들 한숨’(한겨레) 내일부터 초 중학교 단기방학 돌입...맞벌이 부부들 어쩌나‘ (MBC 5월 1일) 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었다.

 

 이 기사들에 달린 댓글은 대체로 세 가지 의견으로 모아졌다. 쉽게 휴가를 낼 수도 없고, 마땅한 학원에도 맡기기 힘든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의견, 이에 대해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돈을 벌고 있으니 불평하지 말고 감수하든지 직장을 그만두라는 의견, 선생들이 놀려고 단기방학을 만들었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이런 보도와 댓글을 보며 참 의아했다.
 방학에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문제는 ‘단기방학’ 이전부터 있어왔던 문제다. 여름과 겨울에 긴 방학이 있다. 단기방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름과 겨울 방학은 장기간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기가 더 쉽다고 했다. 그 대책이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방학에 대비해 운영되는 학원이나 공부방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때맞춰 휴가를 낼 수 없고, 그래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것은 ‘단기’ 방학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를 보육기관이라 생각한다면, 단기 방학은 물론 기존의 장기 방학도 없애야 한다.

 

 사실 올해 처음 시행되어서 그렇지 이 제도가 정착되면, 잘 발달된 우리나라 사교육 기관은 수요에 맞춰 발 빠르게 단기방학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다. 다만, 처음 시행되었기 때문에 빚어진 혼란일 수도 있다.

 이를 증명하듯 벌써 단기방학 중 사교육만 부추긴다는 보도가 꽤 많이 쏟아졌다. 나는 이것도 의아했다.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은 그야말로 집중 사교육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학교가 보육기관을 대신해야 하는 현실은 뭔가 이상하다. 현상적으로는 단기 방학이 보육 문제를 야기했다 하더라도, 그런 관점에서 단기 방학을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단기방학이 생기기 전에도 맞벌이 부부의 보육문제는 있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 학원이나 공부방에 의존한 것이야말로 개인적인 궁여지책에 불과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맞벌이 부부를 위한 보육 대책이 전무한 현실이다. 단기 방학 뿐 아니라, 여름․ 겨울 방학 기간에도  국가 차원의 대안 없이 사교육 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한편 단기방학이 시행되면서 때맞춰 문체부에서 ‘관광주간’을 정하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연차휴가를 장려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자 단기방학의 취지가 내수 경기 활성화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단기 방학’의 원래 취지는 4계절 방학을 통해 학생들이 수시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고 학사일정의 내실화를 기하자는 것이지, 내수 경기 활성화는 아니다. 학사 일정이 경제 논리만으로 좌우되거나, 그렇게 인식된다면 그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 사회의 교육철학의 부재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기 방학으로 보육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단기방학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인 '보육 복지'을 말해야 한다. 세계 최저 출산율의 나라에서 국가 수준의 보육 대책이 황무지 수준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학교의 단기 방학에 맞벌이 부부가 쩔쩔매야 할 정도로, 국가는 보육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맞벌이 여성이 단기 방학 중 보육 문제를 걱정하자, ‘ 그 정도도 감수 못하면 직장을 그만둬라.  그 대신 돈 벌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연하게도 한국의 성 평등 지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 해 세계 경제 포럼(WEF)의 발표에 따르면 142개국 중 117위였다.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및 기회’가 124위, ‘동일 직군 남성과의 임금 평등’이 125위였다. (‘2014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 2014.11)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다. 그래서 더욱 보육문제는 단순히 맞벌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단기 방학’에 반응하는 이 사회와 언론의 단기적이고 단순한 분노가 나는 참 많이 아쉽다. 학교에서 학사 일정을 정하면서 ‘보육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언론과 대중의 질타를 보며 나는 의심스러웠다. 우리 사회는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마저 결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학교는 교육 기관으로서 제 구실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면 된다. 단기든 장기든 방학기간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나아가서는 방과 후에도 안심할 수 없는 한국의 부모들을 위해 보육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것은 복지의 문제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교육과 보육을 혼동하는 애매한 지점에 아이들을 방치하고, 부모 개인들에게 무한 책임을 지운 채, 국가와 사회는 단기적 관심만 보이며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학교라는 공간을 활용하든 기타 시설을 활용하든 아이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보육 프로그램과 장소가 있어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부모의 노동 환경도 개선되어야 한다.

 

 


20150512 글:눈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