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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이 시대 가장들 모였으니 “내 얘기 한번 들어보소”

[고양신문] 이 시대 가장들 모였으니 “내 얘기 한번 들어보소”
구석에 몰린 아버지들 뭉쳐 연극 통해 서로에게 힐링

[1210호] 2015년 02월 04일 (수) 15:11:42 이성오 기자 rainer4u@mygoyang.com

   
▲ 아버지극단 ‘가장자리’ 단원들이 대본 리딩에 앞서 놀이연극으로 연습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구석에 몰린 아버지들 뭉쳐
연극 통해 서로에게 힐링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가장자리’는 우리 시대 가장의 고뇌와 애환을 풍자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가장자리’라는 이름을 자기들이 1년이나 먼저 쓰고 있었으니 “이건 원조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버지극단 ‘가장자리’ 단원들이다.

평균나이가 40대 초반인 6명의 가장자리 단원들은 올 봄에 있을 공연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금요일)씩 모여 맹연습 중이다. 연습실은 행신동의 지역 커뮤니티 공간인 ‘동네문화놀이터 소풍’이다.  

“단 원 중에는 연극이 처음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죠. 직업도 교사, KTX 정비사, 건축디자이너 등 다양해요.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가장이라는 역할은 다들 처음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우리들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돈 버느라 정신없는 남자들이지만 저희들은 잠깐 시간을 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모여 우리 남자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 갈 길에 대해 서로 얘기 나누고 있어요.”

연습실에 모이면 단원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몸풀기용 탈춤이다. 몇 가지 기본 동작만 따라하는데도 숨이 헉헉 막힌다. 다음은 놀이연극(모션게임)이라고 하는 독특한 형태의 연습을 한다. 한 명이 무대 가운데로 나와 특정한 정지동작을 취하면 그것에 영감을 얻어 다른 동료들도 말없이 옆에서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끝나면 둘러앉아 자기가 한 동작에 대해 각자 설명한다.

   
단원들이 탈춤을 추며 몸을 푼다.

단원인 안재경(46세)씨는 “극단 활동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큰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지난해 첫 공연에서 단원들이 직접 만든 창작극을 올린 것도 ‘우리들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첫사랑·군대·결혼·첫아이 등 아버지의 시각에서 바라본 남자들의 인생그래프가 옴니버스 형태의 즉흥극으로 펼쳐졌다. 대사를 만들고 토의하면서 서로의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김 대훈(43세)씨는 “가면을 쓰려고 왔는데 오히려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고 했다.  “연극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 체험하려 했는데, 대본을 쓰고 연습을 하다보니 서로에게 공감과 위로를 얻게 됐고 결국 벌거벗은 나를 발견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또한 김씨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연극에 도전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며 “단원들과 함께 연극 연습하고 술 한잔 기울이면서 또 다른 인생수업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들 얘기에 감정이입이 심해서인지 공연이나 연습 중에 울컥할 때도 있었다. 노재동(42세)씨는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지금의 내가 겹치며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었다”며 “그것 또한 힐링의 시간인데, 그러고 나면 왠지 한 주를 개운하게 마감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작년 첫 작품에 이어 극단 가장자리가 올 봄에 올릴 창단 두 번째 작품은 창작극이 아닌 기성극이다. 작품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며 형태는 동작 연기는 하지 않는 낭독공연이라 단원들에게는 부담이 덜하다고 한다.
가장자리의 공연 기획자이자 연출을 맞고 있는 권오현(여, 44세)씨는 “봄 공연에 이어 가을에는 제1회 정기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연극에 관심 있는 아버지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 031-972-3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