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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톡 늬우스/기인 늬우스

아파트에 사세요? 사람이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아파트에 사세요?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의 한 경비노동자가 자살을 한 사건에 이어, 그 아파트에서 '아파트 명예'를 훼손했다고 나머지 78명의 경비노동자를 해고했다는 군요. 내년엔 전국의 모든 경비노동자에게 최저임금100%를 지급해야 하는데 그것때문에 해고당할까봐 경비노동자들이 걱정이시래요. 아파트에 사신다면 우리 아파트에선 어떤 상황인지 관심가져주세요!  우리 동네에 한 글빨 하시는 회오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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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경비노동자는 머슴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의 일원



입주민의 모욕적 언사를 견디지 못한 경비노동자 이만수씨가 분신을 시도해 지난 11월 7일 끝내 사망한 일은 충격적이었다. 분하고 억울한 고인의 마음의 한 구석에는 남은 동료들의 처지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바라는 고귀함이 자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인의 희생은 배신당했다.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의 경비원 용역업체가 78명의 경비노동자들에게 2014년 12월 31일이 마지막 근무일이라고 해고 통지서를 지난 20일 발송하였다. 15년 동안 연장돼왔던 용역업체와 아파트의 계약이 이번에는 연장되지 않았다.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씨의 분신으로 아파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경비업체를 변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신이 된 아파트

아파트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말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법적인 인격을 부여한 회사를 법인이라고 한다. 법인격을 부여받은 회사는 명예를 갖는다. 이렇게 해서 ‘회사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말이 다반사로 쓰인다. 결국 사람들이 아파트에 모종의 영혼을 불어넣은 것이 확실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세상에 누구도 아닌 나로 태어나 살아가는지 막막한 실존의 문제에 직면할 때조차도, 당신이 사는 아파트만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위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의 영혼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 법인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입자주대표자회의가 문제 삼는 명예는 회사의 명예 같은 게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소득과 재산,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이 특정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산다는 자부심을 아파트에 투사하고 그것을 아파트의 명예라 부르는 것이다. 인격이 아니면서 명예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신격뿐이다.

달님, 바위, 나무 등등 인간 아닌 대상이 인간의 정성과 儀式에 반응해 물리 세계와 인간 사회의 법칙을 초월한 영험을 발휘한다고 믿을 때, 근대인은 전근대인이 숭배한 달님, 바위, 나무 등등을 물신이라고 부르고 그 신앙을 물신숭배라 불렀다. 우리 시대에 아파트는 물신인 것이다.

달님은 정화수 한 그릇에 만족하는 소박한 물신이었지만 아파트는 잔인한 물신이다. 이만수씨의 분신을 부르고 나서, 아파트는 다시 예수 탄신일을 한 달여 앞두고 78명의 노동자들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냈다. 이 사람들과 이 사람들의 가족을 떠올려보자. 사람이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일까? 아파트가 사람 안에 똬리를 틀고 사는 것은 아닐까?

발레리 줄레조라는 프랑스인은 도시를 뒤덮은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보고 놀라움을 안고 책을 한 권 썼다. 우리는 주차, 분리수거, 난방, 보안 등에서 아파트를 가장 편리한 주거 형태로 받아들였지만, 아파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아주 많다.

아파트 주원료인 시멘트에는 폐타이어, 폐기 철재류 등 산업폐기물 가루가 섞여 있다. 시멘트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절반을 차지하고, 담보대출 중에서 아파트가 절대적이다. 가계부채는 언제든지 한국 경제의 시스템 위기를 부를 뇌관이다. 교육에도 좋지 않다. 어떤 친구가 아파트에 사는지 아닌지, 산다면 어떤 단지, 몇 평에 사는지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에는 물신으로서 아파트가 어른거린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의 모습을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일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비정규직 인간 노동의 시장가격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고 경비노동자들을 머슴처럼 부리고 여기는 노동권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는 감시․단속적 노동자로 분류돼 최저임금 100%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2007년부터 70%를 적용받기 시작해 단계적으로 상향조정돼 왔는데, 원래는 2012년 100% 적용이 정부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1년말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가 고용인력 축소에 나서자 시행시기를 2015년으로 미뤘다. 그래서 올해까지는 최저임금의 90%만을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내년 100%를 적용을 앞두고 또 다시 대량해고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최근 정부가 경비노동자 대량해고를 막기 위해 배정한 지원금이 3194명에 대한 것에 불과하다며 최소 285억원을 증액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원외교로 수십조 원을 허공에 날릴 돈은 있지만 5만명의 고용 안정에 285억원을 쓸 돈은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에 살지 말자고? 아니다. 불편한 진실과 함께, 우리는 아파트에 살 것이고 살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경비노동자들을 우리와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자.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비노동자들에게 부당한 감정노동까지 시키지 말아야 한다. 단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주의를 주고 항의하자. 상냥하고 밝게 인사를 건넨다면 경비노동자들도 보람을 느낄 것이다. 성탄절과 연말연시에는 그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건네자. It's Christmas!

더 중요하게는 2015년 최저임금 100% 지급을 앞두고 내가 살고 있는 입주자대표회의가 해고라는 편리한 수단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갖자.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자. 그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자고 하자.

그것이 우리가 아파트에 ‘사는’ 모습이다.


20141125 글 : 회오리 / 이미지 : 다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