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2주 전부터 학교 안 나가고 세계일주 작당한 청년의 여행 이야기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 <불이학교>에서 1학기 마무리를 하며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그 중에서 불이학교 진로특강의 일환으로 <수능 대신 세계일주, 702일 간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박웅씨를 초대했다.
이야기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세계일주를 하기로 결심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근데 바~로 답이 나온다.
'돈~~~'
그렇다. 고3때 대학 대신 세계일주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고민이 됐던 건 돈이었단다. 근데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를 해서는 택도 없음을 알게 되었고, 우리보다 최저임금이 3배인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시도했다. 수능 2주 전부터 학교를 안 나가고 두 달 반 정도의 준비를 거쳐 아~무 연고도 없는 호주로 갔다. 호주에서 두 달간 일한 150여 만원을 한국인한테 떼이기도 했으나 9개월 동안 호텔에서 일을 빡씨게 해서 2만불(약 1800만원)을 벌었다. 이 돈으로 1년 1주일 동안 6개 대륙, 24개국을 거쳐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이게 그의 세계일주의 대력적인 내용이다.
그가 이렇게 고생고생을 하면서 대학 대신 세계일주를 떠난 이유는 뭘까? 이게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하자면, 고3때 '내가 나의 인생의 주도권을 끌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단다.
한국에서의 앞으로의 인생이 너~무 뻔하다는 것이 싫었단다. 대학을 안 나왔다는 두려움보다 입시->취업준비->군대->취직->학자금 갚기 등으로 이어지는 너무나 뻔히 보이는 20대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단다. 그리고, 젊은 날 더 큰 경험에 대한 모험심과 욕구, 원하지 않는 취직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태어나서, 그저 먹고 살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거다.
또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언어'다. 답은 영어다. 중남미의 경우 스페인어 정도 하면 좋겠지만 영어만 하면 거의 모든 국가는 대충 커버가 된단다. 영어는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을 위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교통정체가 매일매일 엄청나서 비행기를 놓쳤던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길 물어보면 돈을 줘야 하는 모로코의 쉐프샤우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여서 고산병 걸리는 관광객을 위해 공항 바로 앞에 119가 대기하고 있는 볼리비아 라파즈, 걸어다니는 인구의 20%가 소매치기고 20%가 경찰인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펼쳐졌다.
이런 박웅씨의 여행에 대해 또 여러번 받은 질문은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란다. 답은 2달간 머물렀던 쿠바다.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 할 만하다. 신용카드와 인터넷이 없는 나라, 그래서 핸폰을 죽창 들여다보는 대신 서로의 얼굴을 보는 나라, 기업 광고 대신 이념 광고가 거리를 뒤덮고 있는 나라...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란다.
여행이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어린 나이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모든 문제를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 경험이 삶을 살아가는 '깡'을 길러주었고 지금도 뭔가 도전을 할 때 두려움이 없어진단다. 또한, 다양한 삶을 만나볼 수 있는 창구라는 점도 꼽았다.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세상에서 산다고 착각하게 되고 그 세상 밖의 수없이 다양한 삶은 상상조차 못하게 된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보면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고 박웅씨는 설명했다.
'마음의 근육'
몸의 근육 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여행'이다. 특히 기~인 여행.
이번엔 관객들을 향한 박웅씨의 질문에 이어진다.
'다른 삶을 산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부터 시작해서 '부딪혀 볼 수 있는 용기'까지 다양한 답이 나온다. 박웅씨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프랑스 혁명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작고 사소하더라도 어떤 결과라도 있어야 자기 확신이 생기고 자기 확신이 생겨야 지속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실을 무시하고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어야 조급해지지 않는다. 바로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자존감', '자기 확신'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조급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결과 없이 몇 년이 지나가면 이 '자존감'과 '자기확신'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남들이 아닌 나 자신한테 보여주기 위한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는 절대 바로 나오지 않을 것이지만 조그만 성취들이 모여 '결과'가 된다.
박웅씨는 지금 여한이나 후회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 이유는, '내 마음대로 살면 일단 내 마음대로 한 번 살아봤기 때문에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물론 불안하다. 하지만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도 불안하다. 유재석도, 공무원도, 삼성맨도... 어찌피 뭘 해도 불안함이 없어지지 않는데 그럴 바에는 '내 마음대로 살아보면서 불안한 편이 낫다'고 말한다. 불안은, 공격해서 몰아내야 할 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생의 동반자이자 어쩌면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단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낭만과 열정만 갖고는 망하기 쉽고 반드시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웅씨는 이런 전략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은 '독서'였다고 되돌아본다. 뭘 할지 모르겠을 때,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을 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생각으로만 머문다면 발전이 없으며 결국 직접 행동해보는 게 중요하고 주장한다.
박웅씨의 결론이다.
'마음대로 살되 치열하게 살자!'
강연이 끝나고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진다.
'외국인 여자친구 사겨봤어요?'
- .......... 나중에 따로 보자.
'부모님이 뭐라고 안했어요?'
- 솔직히 없었다. 좀 풀어놓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중요한 건 제가 어려서부터 앞가림을 잘 해왔다. 하하하
'학교'가 뭐라고 생각하냐?
- 이런 질문은 처음이다. 한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이따 답변하겠다.
'그럼 '공부'는 뭐라고 생각하냐? '안다는 것'은 뭐냐?'
- 진지한 답변을 드리고 싶기 때문에 지금 바로 답변을 못하겠다.
'앞으로의 꿈은 뭐냐?'
- 다행히 그 질문은 내 데이터 안에 있다. 고등학교 때 꿈은 영화평론가였다. 근데 지금 이러고 있다. 본인의 의지도 의지지만 사람 인생 한치 앞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장기 계획을 안 세운다. 단기적으로는 인도나 네팔 쪽 여행을 가고 싶고, 그 다음엔 군대를 가야 한다. ㅠㅠ
'여행이 삶의 목표를 만들었냐, 여행이 삶의 목표를 위한 도구였냐'
- 나는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역사책을 보며 역사에 남을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뭘 하든 큰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으로서 여행을 떠났다.
'나는 당신보다 인생을 두 배 이상 살았는데도 여행을 다니면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다녔다. 여행을 통해 뭔가 느끼기 위해, 젊은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조언은?'
- 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강박 없는 여행을 떠났을 때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여자가 이런 여행을 할 경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미에도 19, 20세 유럽 여자애들이 혼자 여행 다닌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노숙 해봤냐?'
- 공항 노숙은 해봤는데 길거리에선 안 해봤다. 유럽, 우리나라, 일본 정도의 치안 상황이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는 위험하다. 자고 일어났을 때 팬티만 남아있을거다.
'우리나라 특성에서 세계일주가 '다른 길'인 건 분명한데, 전 세계를 돌아보고 나서도 세계일주가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나?'
- 유럽 쪽에서는 별로 '다른 길'은 아닌 거 같다. 독일 같은 경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세계 여행하는 게 거의 유행이다.
'여행 가서 주로 뭐하냐? 특히 쿠바에서'
-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갖다와서 음악듣고 누워있다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고 놀다가 저녁되면 재즈 클럽에 가서 놀았다. 쿠바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생각없이 음악들으면 걸어다녔다. 걸어다니다 보면 명소가 나온다. 어디를 가려고 하는 마음 자체를 갖지 않았다. 그리고 좋은 장소는 낮과 밤에 두 번 가곤 했다. 낮과 밤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단기 여행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 단기 여행은 계획을 잘 짜는 게 좋겠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차 한 잔 시켜놓고 멍 때리고 지내는 것도 좋겠다.
'한국의 대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 현 시점의 대학 문제는 법적인 문제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의 대학은 뭔가 배우려고 가는 곳이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안 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인식 때문에 모두가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잘 안되기 때문에 앞으로 몇십년 안에 이런 학벌에 대한 인식이 바뀔거 같긴 하다.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이 어떤 거냐?'
- 기록은 페북에 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 '곡성'이다. 영화관에서 두 번 봤다. 창작자로서의 태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곡성 감독이 참 괴짜다. 그래서인지 곡성을 볼 때 머리채 잡고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지금은 영화에 대해 어떠냐?'
- 씨네21은 꼭 챙겨보고 있고, 불법 다운로드는 절대 안 한다. 앞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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