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풀소리의 한시산책 積雨輞川莊作(적우망천장작)
어제는 비가 매우 퍼붓더니
오늘은 비가 안 오신다
올해 장마는 지각생이다.
천상병의 「장마철」 중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철입니다. 장마라고 비가 매일 오는 건 아니죠.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하고, 지각하기도 하죠.. 올해는 지각에다가 편애까지 하시니 심술스러운 장마입니다.
‘장마’라는 말이 한자말일까요? 한자말처럼 보이는데, 우리말이라고 하네요. ‘장’은 길 ‘장(長)’자이고, ‘마’는 ‘물’의 옛말이라고 합니다. ‘긴비’라는 뜻이 되는데, 저는 ‘장마’ 자체가 우리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마는 주로 6월 말에서 7월 초에 걸쳐서 오죠. 이 시기는 매실이 익어 떨어지는 시기하고도 맞아 ‘매우(梅雨)’라고도 부릅니다. 보통 장마 ‘임(霖)’자를 써서 ‘임우(霖雨)’라고도 하고, 오래 온다고 ‘장마(久雨)’라고 하며, 많이 온다고 ‘적우(積雨)’라고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시의 작가인 왕유(王維)는 ‘적우(積雨)’라고 썼네요. 그의 시 ‘積雨輞川莊作(적우망천장작)’을 볼까요.
積雨輞川莊作(적우망천장작)
장맛비 내리는 망천장에서 짓다 - 王維(왕유)
장맛비 내리는 한적한 숲속 불때기 더디지만
기장밥에 명아주국 끓여 동쪽 밭으로 내가네
넓디넓은 무논 위로는 흰백로들 날아 오가고
울창한 여름나무 사이로 꾀꼬리 노래 들리네
산중생활 고요함 익숙해 아침엔 무궁화 보고
솔가 깨끗한 집 짓고 이슬 머금은 아욱 뜯네
촌노인네 남들과 자리다툼 안 하는지 오랜데
바다갈매기야 어이하여 자꾸 날 의심 하는고
積雨空林煙火遲(적우공림연화지)
蒸藜炊黍餉東菑(증려취서향동치)
漠漠水田飛白鷺(막막수전비백로)
陰陰夏木囀黃鸝(음음하목전황리)
山中習靜觀朝槿(산중습정관조근)
松下清齋折露葵(송하청재절로규)
野老與人爭席罷(야로여인쟁석파)
海鷗何事更相疑(해구하사갱상의)
왕유(王維, 699년 ~ 759년)는 이백(李白)과 거의 동년배로 중국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이요, 걸출한 음악가이자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팔방미인형 천재였죠. 동시대의 걸출한 시인인 이백과 두보에 견주어질 정도로 추앙받아 ‘시불(詩佛)’로 불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좀 덜 알려져 있죠. 그는 특히 자연을 묘사하는데 탁월하였다고 합니다. 송나라시대의 대 문장가인 소동파(蘇東坡)는 왕유의 시와 그림을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표현했습니다. 멋진 표현이죠.
왕유는 상관들에게 찍히기도 하고, 안록산의 난에 연루되기도 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순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세상과 불화한 천재지요. 정치적으로 고난을 받을수록 불교와 도교에 심취했다고 하고요, 망천(輞川)에 있는 별장에 은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의 시는 망천에 있는 별장에서 지은 시들 중 하나입니다.
당시(唐詩)는 교훈을 담으려고 했던 송나라나 조선의 시와 달리 자연에 대한 순수한 묘사가 많아 어떻게 보면 좀 쉽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한자인데다, 지금 쓰는 말과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어렵죠. 특히 나무나 풀이름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들이 많아서 어렵습니다. 그런 점이 제가 시경을 공부하면서 어려워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저는 시를 읽으면서 그림으로 그려보는 습성이 있는데, 모르는 풀과 나무들은 그림으로 그릴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면 참 답답하죠. 하하..
‘空林(공림)’은 ‘빈숲’이기도 하지만, ‘한적한 숲속’이나 ‘한적한 자연’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는 후자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漠漠水田(막막수전)’ 같은 경우 저는 의외로 번역하기 어려워합니다. 끝 간데없이 넓은 평야. 벼가 한창 자라 짙은 녹색을 띄고. 고랑 사이사이로 하늘과 구름 비친 논물이 드문드문 보이고. 머릿속으로는 그려지는데, 그걸 느낌 그대로 짧은 시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네요.
‘朝槿(조근)’은 그 자체로도 무궁화입니다. 아침 ‘조(朝)’를 쓰는 것은 아마도 무궁화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露葵(노규)’도 아욱이나 순채에 해당하는데, 이슬 ‘로(露)’가 들어간 거 보면 아침에 따는 게 맛있는가 봅니다. 이런 글자들은 비록 두자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고 있어도 낱자의 느낌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미련(尾聯)에 해당하는 7, 8구는 현실정치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둬도 구설에 시달리는 자신의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도 비슷한 처지에 몰렸을 때 이 구절을 다양하게 차용하고 있습니다.
긴긴 장마도 언젠가 끝나겠죠. 시인 정끝별은 그의 시 「오래된 장마」에서 장마를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라고도 했으니 때론 지긋지긋해도 떨어지지 못하는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했나 봅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사랑처럼 느껴질 때 쯤 장마는 우리를 떠날까요?
[레디앙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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